오대산 노인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이 세번째.
앞서 두번은 구름이나 안개 때문에 정상에서 주변을 조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12월28일 오늘은 노인봉의 진면목을 드디어 목도했습니다.
엄동이 맹위를 떨치는 겨울의 한복판.
헐벗은 산이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계절인데다 오늘은 구름 한점없는 쾌청한 날씨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노인봉 경치는 몸을 숨길 곳이 없습니다.
이런 날씨를 '티없이 맑은 날'이라고 하겠죠.
강릉에서 평창(월정사)으로 연결되는 6번 국도를 타고 노인봉 산행 들머리인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 도착하니 설국(雪國)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휴게소 주차장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온통 은세상.
도시의 저지대와는 전혀 다른 딴나라입니다.
그런데 휴게소 주차장이 예상외로 한산합니다. 주차된 승용차가 고작 5-6개 정도.
주변을 둘러보니 산행 들머리쪽에 버스 1대와 승용차 10여대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강추위가 엄습한다는 예보 때문에 산행객이 많지 않은 모양입니다.
눈 나라에 홀로 서 있다보니 커피 한잔이 간절합니다. 휴게소에 들어가니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 뿐 이네요. 휴게소 마당에 쌓인 눈 위에 서서 카푸치노 커피 한잔을 마시니 마치 무슨 동화나라 여행을 온 듯 합니다.
각설하고.
낮12시35분부터 노인봉을 목적지로 삼아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진고개 휴게소 주차장에서 노인봉 정상까지는 3.9km.
왕복을 해도 20리가 채 안되는 거리니까 무거운 산행이 아닙니다.
더욱이 노인봉은 오르막 코스도 그렇게 심한 곳이 아니어서 고봉 치고는 비교적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 입니다.
오대산국립공원 표지판을 지나 산행을 시작하면 고랭지의 완만한 구릉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주변의 산줄기가 병풍 처럼 둘러쳐진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 구릉지대는 지나갈 때 마다 참 포근한 느낌을 받습니다.
구릉지대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드넓게 조성된 고랭지 밭 옆으로는 수백여m 흙길 소로가 이어지는데요. 전형적인 강원도 산촌의 풍경화가 이곳에서 그대로 그려집니다. 정선아리랑 한소절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잠시 주변 경치에 눈이 홀려 있는 사이 눈 앞에 나무데크 계단길이 나타납니다.
본격적인 노인봉 등산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사가 그리 심한 것도 아니고, 오르막 거리가 긴 것도 아니어서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진고개-노인봉 코스 3.9km 가운데 오르막 구간은 전체의 절반도 채 안된다고 보면 됩니다.
오르막 구간을 지나 진고개 휴게소 출발점에서부터 2km 정도 쯤 되는 곳에 도달하면 산허리 숲길을 타고가는 평탄한 등산로가 노인봉 삼거리까지 펼쳐집니다.
노인봉 삼거리에 다다르면 정상이 코 앞(250m)입니다.
이곳 삼거리에서 강릉 소금강 지구로 내려가는 등산로(9.35km)가 이어지고, 곧바로 진행하면 저 멀리 선자령-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등산로를 탈 수 있습니다.
시간상 오늘은 당초 목적대로 노인봉만 오르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니 5분여 만에 정상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노인봉 정상 표지석(해발 1338m)이 파란 하늘 아래 선물 처럼 나를 반깁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역시 이름깨나 하는 명산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주문진은 물론 경포 해변과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겹겹의 고봉준령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것이 그림이 따로 없습니다.
뭉게구름으로 수평선만 살짝 가린 동해바다가 한없이 짙푸른 아우라를 뽐내고.
오대 준령을 비롯 지척에 있는 황병산(해발 1407m)까지 겹겹의 장엄한 산세는 눈 돌릴 여유를 주지않고 동공을 사로잡습니다.
이래서 수많은 산객들이 사계절 노인봉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인가 봅니다.
눈꽃이나 상고대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맑은 날 노인봉은 그 존재만으로도 티 없는 감동으로 충분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선자령-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를 꼭 한번 타보리라 마음먹고 진고개휴게소로 돌라오니 오후 3시가 조금넘었네요. 중간에 컵라면을 데워 먹은 시간까지 더해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산행을 많이 하는 분들은 진고개휴게소-노인봉-소금강 지구를 모두 종주하는 코스를 타기도 하는데, 거리는 13.5km에 달합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을 등산한 뒤 소금강 지구로 내려가는 코스는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고, 반대로 소금강에서 시작해 노인봉을 오르는 코스는 7km 이상 계곡을 타고 이동한 뒤 노인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2km를 된비알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하기에 땀 깨나 빼야 합니다.
*참고로 노인봉 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화강암 봉우리 모습이 사계절 어느 때나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 처럼 보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6번국도 진고개 정상에 있는 휴게소)
(산행 들머리를 지나 곧바로 만나게되는 고랭지 구릉 지대. 주변의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풍광이 포근하다)
(오르막 구간과 노인봉 허리를 끼고 도는 평탄 코스를 지나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산허리 등산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계속 보이는 황병산을 한번 당겨봤습니다)
(노인봉 정상에서 바라본 황병산 입니다. 왼쪽 끝으로 소황병산이 흰눈에 덮여 있습니다)
(노인봉 정상의 다양한 모습과 주변의 풍광.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다와 고봉준령이 눈부신 풍광을 선물한다)
'등산은 나의 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자령 산행기- 영동, 영서를 아우르는 순백의 능선 (0) | 2014.01.13 |
---|---|
평창 운두령-계방산 산행기, 겨울산 미학의 진수를 보다 (0) | 2014.01.05 |
태백산 문수봉 코스 설산(雪山) 산행기(당골-문수봉-천제단-당골) (0) | 2013.12.14 |
두타산, 청옥산 종주 산행기(학등-청옥산-박달령-두타산-두타산성) (0) | 2013.12.08 |
계룡산 동학사, 자연성릉 코스 겨울 산행기(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 (0) | 2013.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