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나의 힘

삼척 쉰움산의 사계-산 정상이 50개 우물로 이뤄진 별천지

좋은산 2013. 9. 4. 09:27

 

 

 

 

 

(여름과 겨울, 쉰움산 정상의 두 모습. 갘은 위치 사진이지만, 느낌은 전혀 딴세상 처럼 다르다)

 

 내가 가장 많이 오른 산을 꼽으라면 아마도 쉰움산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오른 횟수가 틀림없이 200번은 넘을 것 같다. 4-5년여 동안 1주일에 평균 1번은 꼭 쉰움산 정상을 밟았고, 많을 때는 1주일에 3번을 간 적도 있다.

 이제는 아예 이맘때 쉰움산의 모습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어디 쯤 뱀이 많이 나타나고, 계단은 몇개가 되는가 하는 산의 특징이나 생태는 물론 산길의 돌틈, 나무 그루터기까지 머리속에 줄줄 외울 정도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산은 거기에 그대로 있되, 계절이나 기후에 따라 항상 다른 모습이니 내가 오른 200번 이상의 쉰움산은 언제나 다른 산 이었다.

 

 

       (가을, 쉰움산 정상에 바라본 운무, 구름 사이로 단풍이 요란하다)

 쉰움산은 아주 가볍게, 단시간에 오를 수 있는 산 이면서도 또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산이다.

 해발 683m.

 높이로 치면 1000m 이상 고산 준령이 즐비한 강원도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렵지만, 동해안 바닷가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향하는 길목에 버티고 선 산이기에 된비알 오르막길 또한 만만치 않아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가벼운 산행과 힘겨운 산행이 공존하는 것이다.

 정상에 서면 누구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 자체가 신이 빚은 큰 바위 조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희한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수백평은 족히 됨직한 드넓은 바위가 기기묘묘한 형상을 연출하는 것도 모자라 바위 곳곳이 움푹움푹 파여 들어가 크고작은 수먾은 우물을 만들어 놓았다.

 일일이 세기조차 어려운 그 우물의 군집을 만나고서야 산 이름이 '쉰움(쉰 우물)'인 이유를 알게된다.

 정상의 표지석도 '오십정(五十井), 쉰우물'로 표기돼 있다.

 

 

       (쉰움산 계곡에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하는 생강나무꽃. 쉰움산은 봄에는 천은사 계곡의 벚나무, 가을에는 화려하기 비할데 없는 단풍 등으로 계절마다 달리 옷을 갈아 입는다)

 

 

 

 

     (쉰움산 중턱의 돌탑 지대. 넓은 바위 쉄터의 조망이 압권이고, 돌탑과 조경목을 연상케하는 소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등산 들머리는 삼척시 미로면 천은사(天恩寺)다.

 삼척시에서 태백시 방면으로 구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미로면 시내 못미쳐 내미로 방향으로 들어오면 길이 끝나는 산 골짜기에 천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천은사는 1287년, 고려 충렬왕 13년에 동안거사 이승휴(李承休) 선생이 칩거하면서 단군으로부터 비롯된 민족의 자존과 기원을 일깨운 '제왕운기'를 썼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천은사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산행거리는 쉰움산 정상까지 총 2.1km.

 약 1.2km는 천은사 뒤 계곡을 타고 들어가는 비교적 순탄한 산행이다. 그러나 나머지 900여m는 숨이 턱에 차 오르는 쉼없는 급경사 오르막이다.

 산행 초심자들은 몇번을 쉬어가는 노고를 각오해야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사실 그런 고단한 수고 뒤에 찾아오는 상쾌함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힘든 등산을 하겠는가?

 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천은사에 잠시 들러 사찰 샘터에서 충분히 목을 축이거나 물을 수통에 채우는 것이 좋다.

 쉰움산 9부 능선에 도달해야 다시 작은 샘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은사 뒤편 계곡의 물길을 건너는 다리를 2개 정도 지나 비교적 잘 조성된 오르막 내리막 등산로를 1.2km정도(약 20분) 이동하면 본격적인 오르막 등산로가 시작된다.

 어느새 윗도리가 땀에 흥건히 젖는 힘든 등산이지만, 바위산과 소나무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광이 힘든 것을 잊게 만든다.

 10여분을 더 올라 쉼터가 될 만한 곳에 도달하면 등산로 옆으로 거대한 석벽을 만나게 되는데, 은사암이다. 이름 그대로 사람이 기거했던 흔적이 또렸이 남아 있으니, 아마도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자주 기거를 하는 하는 것 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그곳에서 5분 정도를 돌아 오르면, 이번에는 산 중턱 바위 언덕 위에 오랜 풍상을 견대낸 것 같은 톱탑 무더기 10여개가 또 한번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위 언덕 자체가 거대한 너럭바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넓고, 주변을 조망하기에도 좋은 위치여서 땀을 식히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곳이다.

 돌탑 무더기에 소원을 담은 돌 하나를 더 보탠 뒤 금강송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비탈길 산행이 이어진다.

 나이테 수령이 족히 100-200년은 됐음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특히 많아 풍상을 이긴 그 고고한 자태를 즐기는 것도 특별한 재미다.

 정상 9부 능선의 샘터에는 항상 표주박 역할을 하는 그릇이 준비돼 있다. 강원도 비탈산을 힘겹게 오른 등산 나그네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어는 귀인이 준비해 둔 것이다.

 정상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뤄져 있다. 바위벽의 경사가 심한 20여m에는 밧줄이 매에어져 있어 그것을 잡고 오르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고 해서 크게 위험한 난코스는 결코 아니다.

 정상의 바위산은 곧바로 오를 수는 없고, 100여m를 돌아 오르는 것으로 등산로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상이 코 앞에 보이고, 바위벽이 그리 높지 않다고 바로 정상으로 오르다가는 위험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기에 반드시 등산로를 잘 살펴 우회 진입을 해야한다.

 드디어 정상, 기도처의 제단 처럼 돌 무더기가 길게 겹겹이 쌓여있는 곳을 지나쳐 바위산에 오르면 쉰우물의 황홀경이 드디어 내 품에 안긴다.

 정상 길 옆에서 만나는 돌무더기는 삼척 사람들의 산메기 기도처다. 돌이나 나무 등을 신령스런 대상으로 삼아 평안을 기원하는 전통 민속 신앙의 일종이다. 돌 무더기 제단에 낀 세월의 이끼가 참 두텁다. 이곳 쉼움산은 태백산과 함께 그런 민속 신앙이 성행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쉰우물 정상에서는 삼척시와 동해시 무릉계곡 방면의 풍경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드넓은 바위 조각품 위에는 수십명이 낮잠을 즐겨도 좋을 만큼 널찍한 휴식처가 준비돼 있고, 소나무 너댓 그루가  마치 한폭의 동양화에 화룡점정을 하듯 자태를 뽐낸다.

 

 

        (눈 쌓인 정상, 오십정(五十井)) 정상 표지석이 선명하다)

          (정상의 봄꽃. 봄에는 산 곳곳에 갖가지 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쉰움산에서 두타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바위 절경. 쉰움산 정상에서 5분만 더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쉰움산 정상은 강원남부권 동해안의 최고 명산인 두타산(1352m)으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기에 그대로 산행을 이어가면 두타산 정상에 서게된다. 쉰움산에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약 3km.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비탈이 심한 코스여서 등산 이동에 2시간은 잡아야 한다.

 두타산으로 오르는 8부 능선 쯤에는 동해시 무릉계곡 두타산성 방면으로 통하는 삼거리 지점이 자리잡고 있다.

 동해시 무릉계곡에서 두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이다.

 쉰움산은 결국 두타산, 무릉계곡과 함께 어우러지는 일심동체의 명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