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과 평창 사이에 있는 대관령(大關嶺)은 우리나라 고갯길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 고개를 넘어야 국토의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 고개를 내려서야 동해 바다와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큰 관문인 셈인데, 김시습, 허균, 이중환 등 학자들의 시문에는 조도(鳥道)나 잔도(棧道)로 표현돼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나 넘나드는 길 또는 깊은 산 계곡에 걸려있는 좁디좁은 길이라는 뜻이니 옛사람들이 이 고갯길을 넘는 것을 얼마나 큰 고행(苦行)으로 인식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대관령 옛길 계곡. 때묻지 않은 강원도 대표 계곡이 선물하는 맑고, 깨끗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강릉 성산면 쪽에서 진입하는 대관령 옛길의 초입 부분. 계곡을 따라 1km 넘게 평지 탐방로가 이어진다.)
대관령 길의 정상부 높이는 865m.
한굽이 돌아가면 또 굽이가 나타나는 것이 쉼 없이 반복되니 흔히 아흔아홉 굽이 고갯길로 일컬어진다.
대관령 옛길은 그 자체가 얘기 보따리다. 옛 선인들의 애환과 문화, 생활이 아흔아홉 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니 그 얘기를 동무 삼아 넘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어린 율곡 선생의 손을 잡고 고개를 넘나들던 신사임당은 고갯길 중턱에서 저 멀리 강릉 들을 되돌아보며 친정 어머니를 그리는 애절한 마음의 사친시(思親詩)를 남겼고, 관찰사 송강 정철 선생도 이 고갯길을 넘어 관동의 팔경을 만났다.
대관령에서는 조선의 대표적 화원 김홍도가 고갯길의 아름다움에 반해 화폭에 담은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조선 중종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고형산에 얽힌 이야기는 대관령이 풀어내는 얘기 보따리 중 압권이다.
고형산은 대관령에 백성들이 편히 다닌 수 있는 넓은 길을 만드는 공적을 세우고도, 뜻하지 않게 홍역을 치른 인물이다.
백성들이 험산준령 고갯길을 넘는데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사재(私財)를 들여 대관령에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을 만들었는데, 병자호란 때 강릉에 상륙한 청나라 군사들이 이 길을 따라 대관령을 넘어 한양으로 손쉽게 쳐들어왔다는 이유로 임금의 분노를 산 것이다. 후에 대관령 길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그의 공적이 재평가 됐으니 험산준령을 넘는 백성들의 불편을 살핀 목민관의 애틋한 사랑이 고갯길에 담겨 있는 것이다.
'기관(記官) 이병화(李秉華) 유혜 불망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선 순조 때 대관령 주민과 상인들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이 비는 겨울에 대관령을 넘다가 얼어 죽는 사람이 많이 생기자 기관 이병화가 반정에 주막을 짓고 나그네들에게 침식을 제공한 덕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관령 옛길 중턱에 있는 기관 이병화 유혜불망비. 백성의 고충을 살핀 마음씀에 고개가 숙여진다.)
대관령 길은 옛날 이 길을 넘던 부사들이 눈물을 쏟던 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600리 머나먼 땅으로 부임할 때는 서러움에 눈물을 쏟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수련한 경관과 후덕한 인심에 반해 다시 눈물을 쏟았다는 고사가 '원울이재'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다.
옛길 정상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이면서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지정돼 있는 '강릉 단오제'가 시작되는 곳이다.
<탐방 코스>
대관령 옛길의 종주 길이는 7.9km에 달한다. 대관령박물관에서 정상의 국사성황당까지 산행 거리만 감안한 것이다.
국사 성황당에서 옛 대관령휴게소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더 진행한다면 그 길이는 10km 이상으로 널어난다.
(대관령 옛길 이정표. 주막터로 가기 직전에 제왕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갈린다)
(본격적인 비탈길에 들어서 땀 깨나 빼는 등산을 하기 전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옛길 탐방로)
옛길 입구인 대관령박물관 주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곧바로 숲길이 이어지는데, 최근에는 강릉시에서 새 탐방로를 개설, 걷기 즐거움이 한층 더해졌다. 과거에는 옛길 초입인 대관령박물관에서 1.5km 구간은 차량 통행로를 탐방객들이 혼용하면서 통행 불편과 사고 위험까지 뒤따랐으나 새 탐방로를 이용하면 숲과 계곡이 선물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3km 계곡을 타고, 물소리 새소리 솔바람소리에 취하다 보면 주막터가 탐방객을 반긴다. 이 깊은 산중에 무슨 집인가 하겠지만, 옛날 선인들이 대관령을 넘으며 쉬어 가던 주막터 자리에 아담한 초가집과 물레방아 등이 복원돼 있다. 물레방아 앞에는 대관령 계곡의 신선한 기운을 담은 샘물도 마련돼 있어 지친 나그네에게는 고맙기 그지없는 존재다.
(대관령 옛길에서 만나는 주막터. 옛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대관령 옛길 중턱의 쉼터. 솔향 가득한 삼림 속에 자리잡고 있는 쉼터여서 솔숲이 내뿜는 피톤치트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주막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행 탐방이 시작된다.
한굽이 돌아가면 또 굽이, 그렇게 2km 오르막을 오르다보면 쉼터를 만나다. 나무 데크에 탁자까지 마련돼 있으니 지나온 옛길의 정취를 더듬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간식으로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 자리다.
신사임당 사친비와 기관 이병화 유혜 불망비, 단원 김홍도의 대관령 그림 등을 지나 1km 정도를 더 가면 '반정'이다. 반정 지점에는 옛 영동고속도로로 이용되던 도로가 나 있기에 강릉시내와 동해 바다를 조망하는데 제격이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옛 고속도로 큰길을 건너면 다시 산행 탐방이 이어진다.
국사성황당까지 남은 거리는 1.9km 정도.
지칠만하면 다시 굽이가 나타나고, 철따라 야생화가 길 옆에서 수줍게 반기니 감상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
선자령으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에 임도 형태의 제법 큰 길이 나타나고, 그 길을 건너 200여m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신성한 공간인 국사성황당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걸작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을 모신 대관령 국사성황당)
무려 20리길을 두발로만 걸어 왔지만, 금강 소나무를 비롯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와 솔향, 탁 트인 조망, 야생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취해 왔기에 몸과 마음이 마치 선계를 지나온 것처럼 가볍다. 나는 지금 백두대간의 허리를 타고 넘는, 대한민국 고갯길을 대표하는 대관령 옛길을 지나왔다.
<대관령 옛길 주변 볼거리>
대관령 옛길 초입에서는 고인돌 형상을 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대관령박물관이다.
한국건설협회와 설계사 협회에서 선정한 우수건축상 및 강원도 최우수상을 수상한 건축물이기에 건물 자체와 외부의 빼어난 조경미 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사진 촬영 명소로도 유명하다. 대지 8794㎡에 건축면적이 972㎡인 대관령 박물관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2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야외에도 장승을 비롯 동장석과 문관석류, 다산과 풍요의 의미를 담은 남근석 등 볼거리가 널려있다. 모두 6개의 내부 전시공간에는 옹관, 석검, 토기 등 선사유물과 신라시대 토우와 토기, 고려시대 목볼․고려청자·청동주전자·청동정병, 조선시대 목기·목각인형·백자·민화 등이 전시돼 있기에 역사를 관통하면서 유물들을 음미하는 재미가 쉽게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대관령 옛길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대관령박물관)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자연휴양림(국립대관령자연휴양림)도 대관령 옛길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휴양림에는 50-200년생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는데, 일부는 1922년-1928년에 인공으로 소나무 씨를 뿌려 조성한 숲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솔고개 너머 숲속 수련장은 강의실과 숙박시설, 잔디광장, 체력단련시설, 숲속교실 등을 구비하여 청소년수련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고, 자기학습식 숲체험로, 야생화정원, 황토초가집과 물레방아, 숯가마터 등이 가족단위 자연학습과 산림문화체험장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명소 중의 명소다.
<대관령 옛길 주변 먹을거리>
대관령 아랫마을인 강릉시 성산면 소재지에는 '성산 먹거리촌'이 자리잡고 있어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권의 절대 다수가 음식점일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 업소가 성업 중이어서 강릉의 대표적인 먹거리촌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해안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대구머리찜을 비롯 생선구이 쌈밥, 추어탕, 막구수, 국밥, 두부, 만둣국, 숯불갈비, 막국수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게 하는 맛 집들이 500여m 좁은 도로변을 따라 즐비하다.
강릉시에서 지정한 모범음식점이 유난히 많이 몰려 있는 것도 성산 먹거리촌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대관령 옛길 탐방 중에는 본격적으로 계곡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펜션과 맛 집들을 만날 수 있는데, 토종닭과 오리요리, 동동주, 도토리묵, 감자전 등 토속 음식으로 입맛을 유혹한다. 이곳에서는 커피와 차, 음료를 마시면서 장시간 산행 탐방으로 허기진 몸에 에너지를 새롭게 충전할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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