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강릉 대관령 '원울이재' 현위치 아니다

좋은산 2013. 8. 30. 18:10

 

 

 ‘옛날 강릉으로 부임하던 부사(고을 원)나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부사들이 울던 곳’ 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대관령의 상징적 명소인 ‘원울이재(員泣峴)’의 위치가 현재 알려진 곳이 아니라는 고증 의견이 제기됐다.

 현재 강릉 대관령박물관∼옛길로 연결되는 중간지점의 야트막한 산 언덕길에는 ‘원울이재’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에는 “부임하는 부사들은
한양(서울
)에서 600여리 떨어진 멀고 먼 지방관으로 발령받은 자신을 한탄하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는 정 들었던 백성과 인심을 못 잊어 울었다”는 설명도 있다.
 이에 대해 강원대 삼척
캠퍼스 차장섭 교수는 강릉문화재단이 최근 발행한 ‘강릉문화 이야기(강릉문화총서 제1권)’ 대관령 편에서 원울이재의 위치가 현재 표지석이 서 있는 곳이 아니라는 요지
의 고증을 제시했다.
 차 교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관령은 부(강릉부)의 서쪽 45리에 있고, 원읍현(원울이재)은 대관령 중턱 부 서쪽 41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며 “원울이재는 대관령 초입의 작은 고개가 아니라 올라서면 강릉과 돌아온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차 교수는 원울이재의 본래 위치로, 현재 지점에서 한참을 더 올라간 대관령 중턱 반정∼대관령 정상 사이 고개를 꼽았다.
 차 교수의 이 같은 고증은 지금부터 꼭 100년 전, 강릉 장현마을 최씨 집안의 김씨 할머니가 작성한 서울·
인천 여행
견문록(서유록)에서도 뒷받침된다.
 강원도민일보 박미현 기자(현 기획
국장)가 지난 2006년 추적
보도로 저자를 확인한 서유록에서 김씨 할머니는 1913년 음력 8∼9월 사이에 이뤄진 여행 여정을 밝히면서 반정이 주막을 지나 ‘원울고개’를 거쳐 상상봉에서 강릉과 장현동 집을 조망했다고 기록했다.
 원울고개를 대관령 중턱 반정을 지난 곳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관련, 지난 1990년대에 ‘서유록’ 국문 필사본을 최초 발굴한 영남대 서인석 교수팀도 최근 현장답사에서 원울이재 표지석 위치가 잘못됐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향토사 권위자인 강릉영동대 김기설 교수는 “마을의
연세 많은 분들이 말하는 현재의 원울이재 위치와 서유록 등 문헌 기록에 차이가 있어 정확한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