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나의 힘

설악산 서북능선(한계령-대청봉-오색) 가을 산행기

좋은산 2014. 10. 13. 15:48

 *설악산 서북능선(한계령-끝청-중청-대청-오색)

 *산행일시= 2014년 10월11일

 *산행시간= 6시간50분

 *산행거리= 13.4km

 

 설악산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때는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가을의 한복판.

 지난 9월 말 대청봉(1708m)에서 시작된 단풍이 산 허리로 거침없이 내달아 이즈음에는 말 그대로 만산홍엽을 연출했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주저없이 설악산 행을 택한 것 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산행에서 단풍 보다는 고산준령의 백미인 천변만화를 모두 즐기고 왔습니다.

 맑디맑은 가을 햇살이 설악의 속살을 아낌없이 보여주는가 싶더니 어느새 발 아래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운해에 파묻혀 구름바다 위에 서 있는 희한하고도 몽롱한 경험.

 우리나라 3대 고봉인 설악산 능선에서 그런 풍광을 목도하게 되니 그 감흥이 더욱 진했습니다.

 대청봉-중청-끝청-한계령삼거리-귀때기청봉-대승령-장수대로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능선은 산행을 하면서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등 설악의 심장부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산행 코스 입니다. 능선 마루에서 공룡과 용아 등 설악의 대표적 암릉을 굽어보노라면 마냥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는 설악의 심장을 감싼 그 서북능선 가운데 오늘은 한계령-대청봉-오색으로 이어지는 절반 코스만 탔습니다.

 

 

 

 

 

 

 

 

 

 

 

 

 

 

 

 

 

 

 

 

 

단풍이 설악산을 온통 점령했을 것 이라고 여겼던 제 예측은 일단 조금 빗나갔습니다.

 1000m 이상 고산지대는 이미 단풍이 한물 지나가 버렸고, 단풍은 이미 해발 600-900m대까지 내려온 시점이었습니다.

오색온천이 있는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주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택시편으로 한계령 정상까지 이동을 하는 중에 주전골과 흘림골을 지나가면서 불붙은 듯 타오르는 현란한 단풍 풍광에 몇차례 감탄사를 뱉어내고, 서북능선 코스를 지나 대청봉에서 정점을 찍은 뒤 오색으로 하산하는 동안 계곡에서 한동안 단풍 절경에 빠진 것이 단풍 구경으로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즈음에는 단풍 산행을 하려면 주전골, 흘림골이나, 공룡능선- 천불동 쪽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서북능선은 앞서 말했듯이 설악의 심장을 굽어보는 크나큰 매력을 안고 있는 곳.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의 암릉을 발 아래 굽어보노라면, 마치 설악의 장쾌한 능선에 가둬진 거대한 용 몇마리가 용틀임을 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 풍광이 힘차고 압도적입니다. 끝청-중청-대청으로 이어지는 설악의 고산 능선이 하늘과 맞닿아 연출해내는 선(線)의 미학 또한 바쁜 발걸음을 자꾸만 멈추게 합니다.

 더욱이 오늘은 능선의 동-서를 안개구름이 거침없이 넘나드는 요상한 날씨 때문에 설악의 장쾌한 암릉이 시시각각 구름에 휩싸이더니 끝내는 발 아래 모든 것을 감춰버리는 운해(雲海)의 장관까지 더해졌습니다.

파도 치듯 일렁이는 구름바다 위에 두발을 딛고 서 있는 느낌.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1년에 몇차례 만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경험입니다.

 

 

 이제 양양-인제를 잇는 구갯길인 한계령 휴게소에서 설악산 서북능선 등산을 시작합니다.

 산행 들머리인 한계령 정상이 해발 920m이니 서북능선 등산은 대청봉(1708m)까지 800여m를 더 끌어올리면 되는 산행입니다.

 해발 제로나 마찬가지인 동해안에서 대청봉을 직접 오르는 것 보다는 한결 쉽다고 느껴지는 코스죠. 그러나 설악산은 역시 설악산. 만만히 보면 안됩니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대청봉 정상까지 거리가 8.3km에 달하는데다 계속 기나 긴 오르막이 급하게 또는 완만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끈질긴 지구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 대청봉에서 오색 방면으로 하산할 경우에는 5.1km 하산길이 '악명 높은' 급경사 계단길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무릎 보호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무릎이 안좋은 분들은 오색-대청봉-한계령으로, 역순으로 산행을 하기도 합니다.

 

 

 

 

 

 

 

 

서북능선 상의 봉우리인 귀때기 청봉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유래가 참 재미 있습니다 자기가 제일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중청,소청 삼형제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아 귀때기청봉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제 귀때기청봉과 대청봉 방향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능선 마루를 걸으면서 보는 설악산 풍광이 천하 제일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틀임하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모두 한눈에 들어옵니다.

 

 

 

 

 

 

 

 

 

 

 

 

 

 

 

 

 

 능선은 동쪽은 아직 청명한 날씨인데, 능선을 경계로 서쪽은 이렇게 안개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습니다. 고산지대의 날씨는 이엏듯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행 준비를 철저히 해야되는 것이죠.

 

 

 

 

 

 

 

 

 

 

 

 

 

 

 

 

 

 

 

 

 

 

 

 

 

 

 

 

 

 

 

 

 

 

 

 

 

 

 

 

 

 

 

 끝청에 도착했습니다. 주변을 조망하기 좋아 쉬어가는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삽시간에 구름이 일어나더니 발 아래 모든 것을 덮어 버립니다. 지금부터 대청봉까지는 운해(雲海)가 장관입니다.

 

 

 

 

 

 

 

 

 

 

 

 

 

 

 

 

 

 

 

 

 

 

 

 

 

 

 

 

 

 

 

 

 

 이제 중청(1664m)과 대청(1708m)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두 봉우리를 잇는 능선의 선이 하늘과 맞닿아 더욱 매혹적 풍광을 연출해 냅니다. 좌측이 중청, 우측이 대청 입니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도 서서히 운해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중청대피소 위로 대청봉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까지는 15-20분 고갯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구름 바다 위에 서서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저 아래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이미 공룡능선을 세차례 넘고 서북능선도 다녀간 적이 있는 저로서는 용틀임하는 공룡과 용아의 암릉이 구름속에서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런데 설악산 산행이 초행인 분들은 더욱 큰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까요.

 차라리 저 아래 무엇이 있는 모른다면 저 또한 그렇게 무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볼텐데.

 이런 때는 아는 것이 오히려 제약이 되네요.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것이죠.

 

 

 

 눈잣나무 입니다. 설악산 이북의 높은 산 정상부에서 자라는 나무 입니다. 고산지대의 강풍 때문에 옆으로 기면서 크게 되는데,누워서 자란다는 뜻의 누운 잣나무를 줄여서 '눈 잣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대청에서 오색으로 하산하면서 비로소 가을 단풍의 황홀경을 만났습니다.

 제가 단풍 산행을 할 때 즐겨 떠 올리는 시(詩)가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 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개/ 저 안에 천둥 몇개/ 저 안에 벼락 몇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날.'

 

 단풍도 마찬가지겠죠.

 대추는 그나마 사람이 가까에서 돌보기라도 하지만, 저 나뭇잎은 저 혼자 풍찬노숙을 모두 이기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날은 포근한 햇살 아래 가만히 몸을 누이고, 어떤 날은 속삭이듯 내리는 보슬비에 흠뻑 젖어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천길 벼랑끝 바위 틈에서, 혹은 하늘을 가린 소나무 그늘 밑에서, 세찬 비바람 그대로 맞으며 떨어지지 않고 살아 남기 위해 홀로 기를 써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날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대청봉에서 오색으로 하산하는 5.1km는 이런 계단의 연속입니다. 계단 턱의 높이가 일반 계단 보다 훨씬 높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내려올 때 몸의 하중이 실리면 무릎에 더 심한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올라 대청봉 정상 정점을 찍은 뒤 서북능선이나 희운각, 천불동 코스를 타는 산님들도 많습니다. 오색 코스는 설악산 대청봉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