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봄에 만나는 '겨울왕국', 여기는 대관령

좋은산 2014. 3. 6. 21:50

 가는 겨울이 고갯길을 넘다가 산허리에 걸렸다.

 

 때는 춘삼월로 들어서지만, 아직도 고갯길에는 통행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눈이 푹푹 빠진다. 고갯길을 넘다가 지쳐서 그런 게 아니다. 고갯길의 겨울은 매년 그렇게 제철을 잊고 버티기에 안간힘을 써 왔다.
 

 입춘, 우수를 지나 경칩이 코앞인 3월의 초입, 영동∼영서의 관문으로 통하는 대관령은 아직도 ‘겨울왕국’이다.

 강릉지역에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03년 만에 최장기간·최대의 폭설이 덮쳤기에 올해 고갯길의 겨울은 더 오래 버틸 것이다. 지난 2월 6일∼21일 보름간 동해안에 쏟아진 눈의 누적 신적설량은 강릉을 기준으로 무려 179㎝에 달한다.

 고개의 터줏대감인 금강송들은 이미 제 몸의 눈을 털어내고 새봄맞이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발은 여전히 깊은 눈속에 파묻혀 있다.

 ‘역사의 고개’, ‘소통의 고개’가 선물하는 이색적인 풍경화에 나그네들이 넋을 잃는다. 그래서 주말마다 대관령 옛길을 비롯해 백두대간 주능선인 선자령, 곤신봉, 능경봉 등지로 이색 풍경화를 만끽하려는 나그네들이 수없이 몰려든다.

 봄에 걷는 설산(雪山), 그곳의 탐방로는 모두 역사와 문화의 도시∼강릉이 자랑하는 스토리가 넘치는 유서 깊은 길이다.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지정한 강릉 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가 이 고개를 모태로 천년 생명을 이어왔고, 그 옛날 강릉 부사들이 부임할 때 울고, 떠나갈 때 후덕한 인심과 풍광에 반해 눈물 지었다는 ‘원울이재’의 고사도 애틋하다.

 대현 율곡 선생의 손을 잡고 고갯길을 넘나들던 신사임당은 고갯길 중턱에서 강릉 시내를 되돌아보며 친정어머니를 그리는 사친시(思親詩)를 읊었고 조선의 대표적 화원 김홍도는 이 고갯길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림을 화폭에 담았다.

 현대의 사람들은 대관령에서 시작해 강릉 주변을 휘감아 동해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에 ‘바우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우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데, 설산의 눈부신 풍경화가 더해지니 나그네들에게 대관령은 3월의 별천지다.

 신사임당과 율곡은 물론 정철, 김시습, 허균, 이중환 등 문명(文名)을 떨친 수많은 학자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던 이 고갯길이 그려내는 풍경화를 만끽하다 보면,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 또한 시심(詩心)과 장단이 저절로 우러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대관령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이완하고, 면역 기능을 증진시키는 산림 내 분비물질인 ‘피톤치드’ 발생량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중국미세먼지와 황사가 전국을 숨 가쁘게 만들고 있는 이즈음에 대관령과 강릉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가는 계절을 잊고, 봄과 공존할 심사로 해발 865m에 달하는 고개에 걸터앉은 황홀한 겨울이 있고, 미세먼지가 넘어 올 수 없는 솔향 강릉의 티 없이 맑은 호흡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