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불현듯 등자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등자는 사람들이 말에 올라탈때 딛고 타거나 말을 타고 달릴때 두발을 안정적으로 딛기 위해 말안장에서부터 늘어뜨린 일종의 발 받침대 입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도구이지요.
그런데 인류의 전쟁사에서 등자 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친 도구는 없을 겁니다.
전쟁터에서 보병과 기병이 맞서면 누가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할까요. 당연히 말에 올라타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는 기병의 파괴력이 훨씬 더 세다고 봐야 할 것 입니다.
그런데 등자가 없다면 그 기병은 어떻게 될까요. 말에 올탔다고 해도 불안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웬만큼 말을 다루는데 숙련된 기사가 아니라면 울통불퉁한 말 위에서 가속을 붙이기는 커녕 제대로 달리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칼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는 등의 기예는 더욱 힘들겠지요. 창으로 찌르기를 한다고 해도 버팀목이 없는 말 위에서 힘이 제대로 나올리 없습니다.
그래서 등자가 없는 기병은 사실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전투에서 말이 끄는 전차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죠.
고대 초기의 전투는 기병을 투입했다고 해도 그 기병은 등자가 없는 불안한 기병입니다.
중무장 보병 군단의 밀집대형을 주력으로 한 로마가 고대 전투를 휩쓸 수 있었던 것도 그 당시에는 아직 기병이 등자를 사용하지 않은 덕 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로마의 중무장 보병은 주둔지에 도착하면 참호와 진지부터 구축하고 단 하룻밤을 숙영해도 온갖 편의시설을 갖추는 교과서적인 군대였습니다. 로마군은 곡괭이로 이긴다는 말까지 있으니 절대 그 기본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영화를 보면 고대 전투씬을 다루면서 등자를 늘어뜨린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사실 역사적 고증에서는 잘못된 장면입니다. 기수로 나선 배우들이 등자없이 편안히 달릴 수 없기에 편의상 등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등자가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출토 유물 등으로 가늠해볼때 중국 한나라 시대(BC202년-AD220년) 쯤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등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고 , 철제 등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AD300년 전후가 돼야 합니다. 유럽은 이보다 훨씬 늦어 서기 700-800년이 돼야 등자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도 고분의 벽화와 출토유물 등을 종합해 볼때 서기 300-400년경부터 등자가 보편화됐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편입니다. 고구려의 중무장 기병이 달리는 말 위에서 강궁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 입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쓰임새의 중요성이 이를데없는 존재인 등자의 출현이 이렇게 늦은 것은 인류 역사에서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중무장 기병(기사)가 주력군으로 편성되는 것도 다 등자가 보편화 됐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발 받침대도 없는 말 잔등위에서 엄청난 무게의 철갑으로 무장한 기병이 장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은 등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그럼 징기스칸의 몽골군과 유럽의 중무장 기병이 맞붙었을때 다같이 등자를 사용했을텐데, 왜 유럽의 가병이 여지없이 나가떨어졌을까요.
그것은 속도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몽골 기병은 정말 겉에 가죽 정도만 걸친 경비병 이었습니다. 경쾌한 기병에 엄청난 지구력을 갖춘 말이 속도전으로 들이치니 육중한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이 패퇴했던 것 입니다. 몽골 기병은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데, 대부분의 유목민족이 그러하듯이 그 강력함이 비교할데가 없습니다. 몽골의 경무장 기병이 싸움에 져 쫓기는 척 하면서 적군을 먼 곳으로 유인하면 이겼다고 생각한 적군이 대부분 앞뒤 가리지 않고 추쳑전을 펴게 되는데, 중무장 적군 기병이 지칠때 쯤 도망갔던 몽골 기병이 어느새 다시 전장으로 돌아 와 적군을 포위하고 강력한 화살로 궤멸시키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몽골군이 가장 즐겨 사용한 전법 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한번 자세히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등자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말에서 떨어졌을때 기수가 등자에서 발을 빼지 못하면 치명상을 잃게 된다는 것 입니다. 발을 빼지 못하면 기사는 말에 거꾸로 매달려 질질 끌리는 상태로 달리게 되고 결국 머리가 부서지고 말겠지요.
문명의 이기라고 해도 모두 어딘가에는 약점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가장 우월한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로 존 메케인 (0) | 2013.11.15 |
---|---|
일본 시마네(島根)현에서 독도의 소중함을 느끼다 (0) | 2013.10.03 |
칸나에와 자마(한니발과 스키피오) (0) | 2013.09.23 |
성동격서(聲東擊西)를 경계한다 (0) | 2013.09.23 |
독도는 동해안이 해답이다 (0) | 2013.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