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추신구라 이야기 2

좋은산 2013. 8. 28. 17:23

 추신구라는 에도시대 일본 아코성 무사들의 얘기입니다.

 아코성은 현재 효고현(兵庫縣)에 위치해 있습니다. 효고현은 현재 강원도와 자매교류를 하고있는 돗토리현과 경계를 맞대고 있습니다.

 아코성의 성주(아코한(藩)의 번주)였던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는 1701년 3월 참근교대를 위해 막부의 중심지인 에도에 머무르고 있던 중 천황이 막부에 보내는 칙사의 접대역을 맡게됩니다.

 아무리 이름 뿐인 천황이라고 해도 천황의 칙사를 접대하는데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법도가 뒤따릅니다.

 따라서 이 접대의식을 지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쇼군가의 세력가인 '기라 요시나카(吉良義央)'였습니다. 그런데 아사노 번주에게 접대 법도를 잘 가르쳐 줘야 할 기라가 접대 의식의 순서나 예절 등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습니다.

 아사노 번주가 자신에게 그럴듯한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라의 처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던 아사노 번주는 칙사 접대 직전에 분기를 참지 못하고 결국 에도성내에서 칼을 휘둘러 기라에게 상처를 입히고 맙니다. 쇼군이 기거하는 영내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은 곧 반역에 버금가는 행동. 아사노 번주에게는 곧바로 할복 자결하라는 쇼군가의 명령이 떨어지고, 아사노 번주의 영지인 아코성은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성주의 할복 자결과 아코성 해체 소식은 곧바로 아코성의 사무라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아코성의 가신들은 끝까지 저항하다 주군의 뒤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순순히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입니다.

 천하의 눈과 귀도 과연 아코성의 가신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것에 쏠립니다. 당시 아코성은 일본에서 그리 크지는 않은 한(藩)이지만, 무를 숭상하는 상무(尙武)의 기풍의 남다른 곳 이었기에 아코성 가신들의 대응 방법이 더 이목을 끌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코성의 가신들은 순순히 성을 내주고 낭인(떠돌이 사무라이)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자 천하의 여론은 아코성 낭인들을 "벌레보다 못한 놈들"이라고 비난하는데 모아집니다. "자신들이 섬기던 주군이 칙사 접대역을 맡아 일하던 중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도 어떻게 한번 저항도 않고, 제 갈길을 가냐"는 것 입니다.

 성을 내주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아코성 낭인들의 귀에도 천하의 그런 비난이 안들릴리 없겠지요. 하지만 아코성의 낭인들은 그런 비난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술집을 전전하고, 노름판을 기웃거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일관합니다.

 아사노 성주의 죽음을 부른 기라 쪽에서도 처음에는 상무정신이 투철한 아코성의 복수를 우려해 크게 긴장하지만, 아코성 낭인들의 한심한 처신을 보고 시간이 흐를수록 경계심을 늦춥니다.

 그러나 아코성 낭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은 모두 주군의 복수를 위한 연극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쇼군의 세력에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 결국 성을 넘겨주고 뿔뿔이 흩어지지만 아코성 가신들은 '오이시 쿠라노스케'라는 가로(家老)를 중심으로 은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복수를 벼르고 있었습니다.

 상대편인 기라 쪽에서도 가로를 중심으로 아코성 낭인들의 숨겨진 움직임을 포착, 친인척 관계에 있는 한(藩)의 무사들을 빌려와 경계를 맡기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지만, "제깟놈들이 정말 복수에 나서겠냐"는 느슨한 생각 또한 떨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1702년 12월14일 밤. 부슬부슬 눈이 내리는 밤, 아코성 출신 낭인 47명이 에도성 내에 있던 기라가를 습격합니다. 당시 기라가의 수비측 인원도 아코성 낭인들에 비해 결코 열세가 아니었습니다. 2년여 동안 주군의 복수를 위해 남몰래 칼을 간 아코성 낭인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공격에 나서고, 기라가의 사무라이들 또한 주군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방어전에 나서면서 싸움은 밤을 새워 계속 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코성 낭인들의 압승. 기라가의 저항은 아코성 낭인들의 절치부심한 복수의 칼을 이겨내지 못 합니다. 기라가의 가신들이 거의 다치고 죽어 더 이상 저항이 없을때 아코성의 낭인들은 집안을 뒤져 창고에 숨어있던 기라를 찾아내고, 결국 그의 목을 벱니다.

 그 목을 가지고 아코성의 낭인 47명이 찾아간 곳은 주군인 아사노 번주의 시신이 안치된 에도성의 사찰 센가쿠지(泉岳寺). 그곳에서 주군의 영전에 기라의 목을 바치고, 복수를 한 사실을 고한 아코성의 낭인들은 쇼군가의 처분을 기다랍니다.

 당시 아코성 낭인들의 복수극은 평화시대에 젖어있던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무사정신을 일깨운 일대 쾌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들이 아코성의 가신이었던 한 노인은 "아코성 낭인들이 거사를 일으켰다"는 얘기를 듣고 뛸듯이 기뻐하다가 자신의 아들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결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 아코성 낭인들의 복수극은 일반 대중들에게 사무라이의 혼이 담긴 거사로 평가받는 분위기 였습니다.

 물른 즉시 복수에 나서지 않고 2년여 뒤에 기습을 한 행위 등에 비판이 없지 않았으나 막부의 대체적 여론도 "아코성의 가신들이 억울하게 죽은 주군을 위해 몸을 던졌다"는 찬사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낭인들을 살려주라는 구명운동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47명에게 내려진 쇼군가의 처분은 "전원 할복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주군의 복수를 위한 결의는 이해하지만, 쇼군의 영내에서 떼를 지어 칼을 휘두르는 등의 소란 행위를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 됩니다. 그 이면에는 아사노의 할복 또한 쇼군가의 처분이었는데, 이제 그 낭인들이 복수의 칼을 든 것은 쇼군가에 대한 정면도전 이라는 인식도 내포돼 있습니다.

 47명 아코성 낭인들은 거사에 성공한 뒤 쇼군가의 처분에 따라 전원 할복 자결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곳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추신구라 이야기에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의(義)나 그들의 집단 의식 등이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義입니다.

 추신구라에 등장하는 47명의 무사와 관련해서는 2차 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아시아 이웃들의 거센 비판을 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그들을 극진히 신봉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그는 센카쿠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47명 무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애도를 표했다고 합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그런 것 처럼 요즘도 센가쿠지에는 아코성 낭인들을 기리는 발길이 파도 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머리속을 지배하는 義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것 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모신 주군을 위해 기라가의 선량한 가신들을 숱하게 살상하면서 복수극을 펼친 무사들을 찬미하는 일본인들의 인식은 일견 이해하기 힘든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평생 직장'의 뿌리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는 직장내의 비리를 안고 가기위해, 또는 비리가 터졌을때 상사나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구성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심심치않게 발생합니다.

 혹자들은 "한국인들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잘못된 길을 갈때 세번 간곡히 간해서 듣지 않으면 자신의 정의를 좇아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인은 그런 경우 결국 의리를 좇아 주군의 잘못된 길을 따른다"는 비교 평가도 내놓습니다.

 일본인들은 혼자 있을때는 그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용감해 진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빨간불도 여럿이 건너면 겁날게 없다"는 말까지 일본사회에 등장했을까요.

 그들의 그런 집단의식이 맹목적인 무사정신과 접목되면서 지난날 아시아 이웃들을 침탈,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고, 2차대전 무모한 도발을 자행하고, 천황의 이름아래 전투기를 몰고 군함에 뛰어드는 가미카제형 항전을 자행하고, 전투력을 상실해도 옥쇄까지 감행하게 한 안타까운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코성 낭인들의 목숨을 던진 의리나 충(忠)은 읽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영원한 찬탄의 대상이 되고있는 아코성 낭인 47명. 분명한 것은 지금도 일본의 2세들이 어릴때부터 그 책을 읽고 연극, 드라마를 보면서 자란다는 것 입니다. 경쟁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클지는 추신구라가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