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화천 여행(감성마을, 산소 100리길, 파로호)-분단의 아픔 위에 수 놓아진 낭만

좋은산 2014. 11. 23. 23:04

 화천(華川)에 나녀왔습니다.

 여행을 한 것은 시월 마지막 주 였는데, 일상에 쫒기다보니 이제야 후기를 정리하게 되네요.

 화천은 북한강 물줄기를 타고, 북녘땅과 이어지는 '분단의 현장' 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선 한반도의 중허리에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많은 아픔과 비극을 목도하고, 감내하면서 다시 하나로 합쳐질 미래를 기약하고 있는 곳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흔히들 접경지라고 부르는 곳이다보니 다들 아시다시피 군 부대가 마을회관 처럼 많은 곳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이들이 화천지역에서 3년 혹은 2년씩, 청춘의 황금기를 보낸 인연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에 유익했든, 그렇지 않았던 간에...

 저는 해군(海軍)을 다녀온 때문에 화천과 직접적 인연을 맺지는 않았지만, 30년 전 대학시절에 교련을 받으면서 일주일 간의 전방입소 군사훈련을 화천 군부대에서 받았기 때문에 아주 인연이 없는 곳은 아닙니다. 그곳을 이번에 1박2일간 방문하면서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얻었으니 그 또한 감회가 새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작가 '이외수' 선생이 터를 잡고 있는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

 이외수 선생은 2014년 11월 현재 18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네티즌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는 작가로도 유명하죠.

 (물론 악플러들도 적지 않지만 그것은 선생과 문학과 언어가 가지는 현실적 경계에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 양상이 더해진 것이기 지금의 시대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생각의 차이로 여겨집니다)

 1972년 소설 '견습 어린이들'로 등단한 뒤 '황금비늘', '칼', '괴물', '벽오금학도', '절대강자', '장외인간' 등 수많은 작품을 쏟아낸 이외수는 지난 2006년 이곳 화천의 감성마을에 둥지를 틀고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아간 그 시점은 이외수 선생이 위암 투병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기에 마을의 전체적 분위기가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투병 소식을 들은 직후의 방문이었기에 제 기분상 더 그렇게 느껴졌겠죠.

 그래도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현존 작가의 보금자리를 노크하는 감성의 떨림까지 그런 적막한 기분에 젖지는 않았는데요. 마을로 들어가는 호젓한 산책로며, 작가의 문학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문학관, 그리고 집을 포함한 집필공간까지, 늦가을이 켜켜이 내려앉은 감성마을은 참으로 편하고, 아늑하면서도 한편으로 치열한 정신이 펄펄 살아서 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이외수 선생이 이곳 감성마을에 들어온 뒤 화천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고요.

 아하, 그래서 사람 또한 관광자원이 되는가 봅니다.

 만약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시대의 멘토들을 만약 한곳에 모아놓고 마을을 꾸릴 수만 있다면, 그 마을은 단번에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지도 모를 일 입니다. 아니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겠죠.

 감성마을 문학관 입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의 사진 모형과 눈 인사를 나누며, 쾌유를 빌어 봅니다.

  

 우리 일행의 아낙들이 산책로를 따라 감성마을로 이동합니다. 뒷 모습이 참으로 낭만적 입니다.

 

 이외수 선생의 작품과 시를 새겨 넣은 시비들이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 도열해 나그네를 반깁니다.

 

 

 

 

 

 

 

 

 

 

 

 

 

 

 

 

 

 이제 문학관에 도착했습니다. 산책로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서 이동한 것 같습니다. 문학관은 이동 동선이 참 잘 짜여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의  문학여정이 외줄 동선을 따라 이해하기 쉽게 담겨져 있었고. 특히 손때 묻은 선생의 옛 육필 원고지가 그대로 보관, 전시되어 있는 것이 눈길을 사로 잡았습니다. 문학관 내에는 작은 무대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또한 18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선생의 소통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곳에서 바로보는 느낌이 참으로 묘했는데요. 난 화분이 서 있는 곳은 창틀 입니다. 창으로 밖을 바라본 풍경인데, 창 너머 눈이 깔린 듯은 곳은 건물의 빈 공간이고, 그 건너편 창은 우리가 지나온 문학관의 또 다른 전시공간 입니다. 하나의 창으로 여러 풍경과 생각이 겹치는 듯 하는데, 이 또한 감성마을 답습니다.

 

 

 

 

 

 

 

 

 

 

 

 

 

 

 

 

 

 

 

 이제 이외수 선생의 '감성마을' 탐방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해 하룻밤을 유숙합니다.

 저희들이 멀리서 온다고 음식을 참으로 푸짐하고 정갈하게 준비했네요. 얼마나 정성이 배어있던지 식사 내내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천 산소 100리길 및 파로호 탐방.

 산소 100리길은 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일부 구간만 아침에 산책하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늦가을과 물안개가 어울려 신비감을 더합니다. 화천 수력발전소 아래 산소 100리길 구간을 탑방하면서 이렇게 훌륭한 풍광을 끼고 생활하는 화천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산소 100리길 주변의 마을들을 보면서 전암 구례와 경남 하동 지방의 '섬진강'변 마을과많이 닮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만약 남-북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산소 100리길 물길을 타고,그대로 북녘의 강원도 땅으로 발길을 옮길수도 있을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 다만 안타까울 뿐 입니다. 만약 그런날이 온다면 화천은 분단된 남-북을 잇는 길목 광지로 유명세를 더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