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를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고군산군도를 가기 위해 태백시-봉화군을 거쳐 경북 북부 내륙을 관통해 가던 중 영주시를 지나게되자 부석사부터 찾아간 것 입니다.
때는 12월 말.
혜곡 최순우(1916년∼1984년) 선생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책 본문에서 극찬한 부석사의 초겨울 보다는 다소 늦은 계절이지만, 천년 고찰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문화유산, 특히 산사(山寺)는 어떤 계절, 어떤 날씨와도 잘 어우러지는 것이 역시 가장 큰 매력입니다.
맑으면 맑은대로, 비 오면 비 내리는 대로, 눈 내리면 또 그런대로, 안개끼면 안개 속 그대로, 산사는 혹은 편안하고, 혹은 경건하고, 때로는 신비로운 풍광으로 방문객을 맞습니다.
제가 부석사를 다시 찾은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새내기 대학생 시절, 고적답사 라는 이름으로 무량수전을 난생 처음 본 것이 벌써 30년도 더 지났습니다.
이후 책에서, TV 영상물에서 이따금씩 그 이름을 되뇐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 다시 최고의 유산을 만나게 된 것 입니다.
백두대간의 중심인 소백산 기슭, 사방으로 펼쳐진 고산준령의 끝없는 행진을 굽어보고, 그 기운을 품에 안는 가장 탁월한 위치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은 30년 전과 다름없이 가장 아늑하고, 소담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빛바랜 고색창연한 현판과 배흘림기둥을 보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고려시대 한가운데로 들어선 듯 하고, 안양루 팔작지붕 누각 앞에서 소백의 연봉들을 굽어 보노라면, 이런 빼어난 자리를 골라 가장 잘 어울리는 가람을 배치한 선조들의 탁월한 식견과 예지에 그저 가없는 찬탄과 함께 고개가 숙여질 뿐 입니다.
저는 그날 일정 때문에 소백산 부석사에 더 머무를 수 없는 것을 다만 안타까워하면서, 천년 세월을 견디고 오늘 우리 앞에 서 있는 부석사의 요사채들에 무한한 감사와 감동을 전할 뿐 이었습니다.
부석사를 소개할 때 가장 좋은 안내서는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입니다.
예전에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평'에 대해 제가 쓴 감상을 다시 들춰보는 것으로 부석사 여행 후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호젓한 산사(山寺) 풍경이 그리울때 제가 즐겨 들춰보는 글이 있습니다.
혜곡 최순우(1916년∼1984년) 선생이 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본문 내용중 경북 영주의 부석사를 소개하는 글 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다가 정말 눈이 시린 글맛이 바론 이런 것 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화재를 직접 보지 않고도 독자가 그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참 멋에 도취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의 힘. 최순우 선생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평'은 정말 한폭의 빼어난 수채화를 눈 앞에 펼쳐놓은 듯 합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중략)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최순우(崔淳雨) 선생은 평생 '박물관 인'이라고 불린 우리 문화재의 가장 친근한 벗 이셨습니다.
지금 북한 땅, 개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문학도를 꿈꾸다 1946년 국립개성박물관에 근무하면서 관장 고유섭(高裕燮) 선생의 감화를 받아 본격적으로 고고미술을 연구해 국립중앙박물관장(1974년 취임)을 역임하는 등 미술사학과 평론에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선생의 글은 소박하면서 품격이 있고, 단아하면서도 가슴에 열정이 끓게하는 말 그대로 홀리는 듯한 흡인력이 압권입니다. 형용사가 겹치는 과도한 수사학이 있다고 해도 결코 격조를 잃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선생이 우리 문화재를 평 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가슴 저미게 고맙습니다.
안개비 내리는 초겨울, 선생이 주심포 양식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희한한 아름다움에 사무치는 고마움을 느낀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 꼽힙니다. 물론 또 다른 이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면 또 다른 시각으로 그 아름다움을 예찬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순우 선생의 순결한 미학(美學)을 끊임없이 본받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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