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주의 서호(西湖)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서호가 항주에 있어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와 항주'라는 항주인들의 자부심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둘레가 15km, 동서가 2.8km, 남북이 3,3km에 달하는 비교적 큰 호수입니다.
한눈에 딱 봐도 우리 강릉의 경포호(둘레 4.3km) 보다 너댓배는 더 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맞췄습니다.
중국에는 서호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가 무려 800개나 있는데, 이곳 항주의 서호가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호수 주변에는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 명소들이 적지 않지만, 저는 이번 방문 일정상 중국 남송 시대에 여진족의 금(金)나라에 맞서 싸운 영웅인 '악비(岳飛)의 묘-악왕묘(岳王廟)'와 뇌봉탑(雷峰塔) 등지를 둘러보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뇌봉탑은 서극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백사전설이 깃든 서호의 상징탑 입니다. 8각 누각식으로 5층으로 구성된 탑 꼭대기(탑신 높이만 71m) 오르면 드넓은 서호 호수와 항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최상의 서호 조망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처럼 역사적인 명소 외에도 수양버들이 척척 들어진 호숫가에서 시민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려 춤을 즐기는 것이 무척 이색적이었고, 마치 빗자루 처럼 생긴 긴 붓에 물을 묻혀 한석봉도 울고 갈 정도의 명필을 선보이는 거리 퍼포먼스도 볼만했습니다.
악왕묘 근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30여분간 뇌봉탑으로 이동하면서 당나라 때 백거이가 쌓은 백제(白堤)와 송나라 때 소동파가 만든 소제(蘇堤) 등 서호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도 오래도록 잊지못할 행운의 추억이었습니다.
그러나 서호 호반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솔직히 제가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호반의 원경이 전체적으로 흐릿했던 탓도 있겠지만, 저는 이곳 남방 중국의 계절이 뚜렸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서호의 풍광을 반감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추색(秋色)이 완연해야 할 가을 한복판이지만, 따뜻한 서호 주변의 나뭇잎은 여전히 신록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단풍이 만추의 서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저에게 가을날의 신록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존재로 다가섰고, 그것은 서호의 서정을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입니다.
서호를 본 저에게 강릉 경포와 서호 둘중에 어느 곳이 떠 아름답냐고 물으면, 저는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경포'라고 답할 것 입니다. 왜냐고요? 서호에는 경포 처럼 깨끗한 대기와 가을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없으니 겨울도 겨울답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눈 덮인 겨울 호반의 눈 시린 풍경화도 서호에서는 감상이 어렵겠죠.
그래서 대한민국은 땅은 좁아도 세상 어디와 비교해도 부러울 것 없는 '금수강산' 임에 틀림없습니다.
관광객과 시민들이 호숫가에 참 많이 몰려 있습니다. 야간에는 이곳 호수에서 분수쇼도 펼쳐진다고 하더군요.
빗자루 처럼 큰 붓을 가지고 물통 속의 물을 붓끝에 찍어 콘크리트 바닥에 글을 쓰는데, 정말 명필이었습니다. 주변을 보니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한명이 "나도 한번 해보자"며 글을 쓰는데, 그 또한 얼마나 잘 쓰던지 현지의 중국인들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역시 평소 학식과 내공이 깊으면 어디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현지 중국인들이 무슨 기공 연마를 하듯이 춤을 추는데, 느린 듯 경쾌하면서 아주 흥겨워 보였습니다.
중국 남송시대에 여진족의 금(金)에 맞서 싸운 악비의 묘 입니다. 강남지역의 지리적 이점을 황용해 금의 기마병을 효과적으로 막았고, 중원의 영토 회복에 주력하던 중 전쟁 확대를 원치않았던 조정 내부 세력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한 인물로, 현재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중국의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배를 타고, 서호를 거로질러 뇌봉탑으로 이동합니다.
뇌봉탑으로 향하는 선착장에 내려서니 인산인해 관광객이 넘칩니다. 역시 중국은 사람이 많아요.
뇌봉탑에 도착했습니다. 서호 전체와 항주 시내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 입니다. 북송 때 건립했는데, 명나라 때 불에 타 탑신만 남게 되었고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훼손 등으로 인해 1924년 완전히 붕괴된 자리에 2002년 다시 세운 탑 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팔각오층탑으로 원탑을 복원했다고 하는데, 탑 내부에 관광객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현대식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점 등이 오히려 복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오를 수는 있지만, 조금 발품을 팔더라도 전통미를 느끼는 것이 더 의미있는 관광 아닌가요.
서호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뇌봉탑 꼭대기에서 서호를 바라보니 이제서야 "정말 그림같다"는 탄성이 나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역시 꼭대기에 올라서야 경치에 대한 감흥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서호의 풍광과 뇌봉탑에 깃들어있는 전설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송나라 때 이야기가 완성돼 중국 경극의 소재로 널리 활용되고, 나중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백사전(白蛇傳) 전설이 이 뇌봉탑에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원래 뱀 이었던 여인과 선비의 사랑 이야기하고 하는데, 이 백사전은 서호의 낭만을 더하면서 뇌봉탑을 예비 부부, 연인들의 방문 명소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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