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할복의 진실

좋은산 2013. 8. 16. 09:21

 일본 영화나 소설을 일가보면 '할복' 자결을 한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사무라이, 무사 문화의 영향이죠.
 카마쿠라와 무로마치, 에도 막부를 거치면서 일본은 무사들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를 형성하는데요.
 원래 무력을 기반으로 하고있는 조직들이 다 그러하듯이 무사들 세계 또한 엄격한 규율과 복종이 그들 사회를 통제합니다.
 막부의 쇼균(將軍)이 각 지방의 다이묘(大名)들에게 그 지방의 관리 운영권을 주고, 자립에 가까운 절대권한을 부여한 뒤 그들을 통제하듯이 다이묘들은 그들 휘하 사무라이(侍)들에게 봉록을 주고, 일부 권한을 할애하면서 또 그들을 거느립니다.
 이런 피라미드식 신분 구조를 통해 '주(主),종(從) 관계'가 형성되는 것 이지요.
 그들의 규율은 명예와 관계되는 것이 매우 많아서 다이묘나 사무라이가 무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주군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할복이라는 처분을 받게 되는데요. 물론 무사 본인이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명예를 훼손했거나 치욕을 맛 봤을 때 본인 스스로 할복 자결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할복'. 한자 뜻 그대로 배를 가른다는 말이죠. 즉, 스스로 배를 칼로 갈라서 자결을 하는 것 이라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런데 과연 사무라이들이 할복을 할때 자신의 배를 갈랐을까요.
 얼마전 공전의 히트를 한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일본에서 다성(茶聖)으로까지 추앙되고 있는 토요토미의 '차 선생' 센노리큐(千利休)가 조선 침략에 반대하다가 토요토미로 부터 할복하라는 명을 받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그때 토요토미는 곁에 있는 시종 무사에게 "네가 가이샤쿠(介錯)가 돼 주라"고 명령합니다.
 가이샤쿠. 할복 자결을 도와주는 사람을 말 합니다.
 이 대목에서 "아니 할복 자결을 하는데, 자기 혼자 하면되지 왜 도와주는 사람이 다 필요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이샤쿠에 할복의 진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이샤쿠는 칼로 할복하는 사람의 목을 쳐 순식간에 목숨을 끊어놓는 역할을 맡습니다.
 일본 무사의 할복은 진짜 배를 가르고 죽는 것이 아니라 가이샤쿠의 도움을 받아 목을 치는 형태로 진행된 것 입니다. 즉, 이름은 할복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가이샤쿠가 할복 자결하는 사람의 목을 치는 '참형'에 가까웠던 것 입니다.
 사실, 칼로 자기 배를 가른다는 것은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면 엄두 조차 내기 어렵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극심한 고통을 맛보는 것 이기에 가이샤쿠가 목을 쳐 순식간에 그 고통을 덜어주는 것 이죠.

물론 개중에는 정말 할복 자결을 한 무사도 있는데, 그것은 극소수이고 일본사를 통털어 대부분은 가이샤쿠가 목숨을 끊어줬습니다.
 처음에는 어느정도 배를 찌르는 흉내라도 냈는데, 후대로 갈수록 더 참형에 가깝게 고착화 돼 할복하는 사람은 그냥 칼을 들어 배에 대는 시늉만하면 뒤쪽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이샤쿠가 목을 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할복 의식이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할복 의식에서 가이샤쿠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할복하는 무사가 칼을 배에 대는 순간을 잘 포착해 단번에 목을 잘라 고통없이 할복을 마무리 지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이샤쿠가 어리숙해서 할복하는 사람이 배를 찌른 뒤 목을 베거나, 단번에 목을 베지 못해 여러번 칼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이 빚어진다면 그것처럼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가이샤쿠는 정말 칼을 잘 쓰는 1급 무사들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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