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나의 힘

강릉 제왕산- 대관령 동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좋은산 2014. 6. 29. 20:40

 우리나라 산 가운데 가장 '거대한' 이름을 가진 산에 올랐습니다.

 '강릉 제왕산'.

 높이는 해발 841m 정도지만, 그 이름은 모든 산을 발 아래에 두는 제왕산(帝王山) 입니다.

 '왕(王)'자를 '황(皇)'자로 바꿨다면, 더 큰 이름이 되었겠지만, 어쨌든 산 중의 '최고'를 가리키는 이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산 이름은 그렇게 위풍당당하지만, 그 이름에 깃들어 있는 스토리는 애잔합니다.

 고려 32대 왕 우왕(禑王)의 발자취가 이 산에 깃들어 있습니다. 후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의해 유배길에 오른 우왕이 한동안 강릉에 머물면서 제왕산 정상에 산성을 쌓고 기거했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는 것 입니다. 실제로 제왕산 정상부에 가면 산성의 흔적인 돌무지를 군데군데, 여러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제왕산은 강릉시 성산면과 왕산면에 걸쳐있는 산 입니다.

 대관령을 기준으로 할 때 동편에 있는 산으로, 대관령 동쪽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바로 제왕산 입니다.

 

 정상에 서면 능경봉-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뼈가 하늘과 맞닿은 채 용틀임하고, 동해 바다와 강릉시내가 발 아래 황홀경으로 다가섭니다.

 제왕산을 품고 있는 대관령은 우리나라 고갯길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서쪽이든, 동쪽이든, 예로부터 이 고개를 넘어야 신(新)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류와 소통의 가장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온 셈이죠.

 그래서 제왕산과 대관령은 요즘도 사람과 차가 함께 넘고 있습니다.

 산중의 옛길 등산로에는 두발로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이 북적이고, 그 산을 깎고 관통해 만든 현대식 도로에는 네발로 달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 차(車)가 쌩쌩 넘나듭니다.

 대관령 도로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지난 2002년 4차선으로 개통된 신(新) 영동고속도로이고, 또 하나는 산업화,개발시대의 추억이 배어있는 구절양장, 2차선 고속도로 입니다.

 결과적으로 대관령 고개에는 옛길 등산로에서부터 산업화,개발시대의 유산인 2차선 도로, 그리고 최첨단 지능형고속도로까지 모든 유형의 길이 공존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교통로 발전의 변화상을 모두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산행일시: 2014년 6월 28일

 *산행코스: 대관령박물관 주차장-대관령 계곡-제왕산, 반정 갈림길- 소나무군락지-제왕산 정상- 원점 회귀

 *산행거리: 편도 5.4km(왕복 10.8km)

 *산행시간: 3시간 20분

 

 

 

 

 

 

 

 

 

 

 

 

 제왕산은 대관령 옛길 등산과 맥을 같이하는 이동경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모두 대관령을 모태로 산행이 이어지기 때문에 제왕산과 대관령 옛길 등산로는 대관령이라는 한몸의 핏줄 같은 등산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관령 계곡을 타고 이동하다가 중간에 능선을 달리해 각각의 등산로가 이어지지지만, 결국에는 대관령 고갯마루 정상에서 만나게 되니, 종주를 한다면 어느쪽으로 가든 대관령 한바퀴를 돌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두 등산로는 등산객의 입장에서 보면, 비슷한 듯 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관령 옛길 등산로와 비교하면 제왕산 등산로는 비탈 경사가 심한 편입니다. 옛길 등산로는 구불구불, 지그재그로 이동하지만, 제왕산은 급경사 능선을 그냥 치고 올라가는 구조로 형성돼 있습니다.

 제왕산 등산로의 경사도는 올라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고 보면 됩니다.

 요즘은 경사가 심한 곳도 통나무 계단형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오르는데 큰 불편은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 폭설기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폭설이 많은 대관령의 특성상 겨울철에는 계단 자체가 완전히 눈에 파묻히기 때문에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면서 등산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왕산을 타는 외지 등산객들 가운데는 옛 대관령휴게소 정상에서 제왕산을 거쳐 산 아래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마을까지 하산 코스를 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상에서 산객들을 하차시킨 버스가 하산지점인 대관령박물관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방법이죠.

 몇년 전, 폭설 뒤에 제가 제왕산을 오를 때는 눈이 깊은 곳은 정말 무릎 깊이까지 빠졌는데, 정상에서 내려오던 외지 등산객들이 사정없이 미끄러지는 경사도에 혀를 내두르면서 저를 보더니 "강릉 사람들 참 대단하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폭설이 삼켜버린 산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조심스레 내려오다 보니 비탈길 경사가 더욱 심하게 느껴졌는지,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제게 대단하다는 표현을 한 것 입니다.

 

 그런데 제왕산 등산시에는 몇가지 사전 지식을 미리 숙지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힘들다"는 생각만으로 여유없이 제왕산을 오르면 제왕산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매력을 제대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산에 다 적용되지만, 제왕산은 더욱 세심한 관찰력을 필요로 합니다.

 등산 후에 "제왕산은 대관령 옛길에 비해 비탈길 경사가 매우 심하다"는 것 외에는 별 감흥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힘들게 오르는데만 급급해 제왕산의 매력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데서 연유한 것 입니다.

 그래서 몇가지 유의점을 제 다름대로 정리한다면,

 

 1)제왕산 소나무 숲을 제대로 즐겨라

   제왕산은 3-4부 능선 지점부터 소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는데,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정말 명품입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마치 대나무 처럼 하늘로 향해 곧게 자란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나무들이 한두그루가 아니고, 그냥 등산로 옆에 서 있는 소나무가 모두 우리나라 소나무의 모델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

 삼척 준경묘의 '미인송' 정도가 돼야 제왕산 소나무의 자태와 견줄 수 있을 겁니다.

 산 중턱에서 모범생 처럼 자란 소나무들은 정상부로 자리를 옮기면 정말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변하는데요.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산을 지킨 노거송들이 제왕산 정상에는 수두룩 합니다.

 저는 몇년전, 제왕산 정상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우와 세상에 이런 소나무들도 있나"하고 탄성을 연발했습니다.

 

 2)대관령 계곡을 유심히 보라

  대관령박물관에서 시작해 제왕산 길림길이 나타날 때 까지 2.6km는 계곡길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그때 계곡의 바위며 물길을 두루두루 살피면서 유유자적,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계곡의 숲에 가려진 폭포를 만날 수도 있고, 수십명이 쉴 수 있는 바위 휴식처가 있는가하면, 탁족을 즐기기에 제격인 곳도 많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계곡에 발을 담그고, 대관령 솔숲의 바람을 벗 삼아 탁족을 즐긴다면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3)제왕산 정상을 혼돈하지 말라

 제왕산에는 표지석이 있는 '2개의 정상'이 존재합니다.

 대관령 정상부에서 하산하는 등산객들은 2개 정상을 모두 만날 수 있으나 아래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은 '제왕산'이라고 써 있는 석조 표지석이 있는 곳을 정상으로 오인하기 십상입니다.

 물론 석조 표지석이 서 있는 정상(해발 840m)도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진짜 정상은 그보다 100여m를 더 이동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수백년 풍상을 견딘 것 같은 노거송 여러그루가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에 '동부지방산림청'에서 세운 나무 막대 표지석이 보이는데, 그곳이 해발표고가 1m 더 높은 진정한 의미의 제왕산 정상(841m)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 경관이 앞의 정상보다 훨씬 훌륭하고, 능경봉과 대관령, 선자령 능선이 모두 한눈에 들어 옵니다.

 물론 그곳에서는 강릉시내를 굽어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제왕산 표지석이 2개 만들어 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심호흡을 깊게 하라

 제왕산을 끼고 있는 대관령 숲은 '피톤치드' 분비량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동부지방산림청이 전문가에게 의뢰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남 장성의 편백나무 숲 못지않은 피톤치드 함량이 조사됐습니다.

 피톤치드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이완하면서 혈압 및 면역기능을 개선하는 산림 내 분비물질인데요. 나무가 해충으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피톤치드가 사람에게는 매우 유익한 물질이라는 것이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왕산 등산시에는 가급적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피톤치드를 마음껏 들이키시기 바랍니다.

 

 5)대관령이나 능경봉 등지로 연장 등산이 가능하다

 제왕산과 대관령은 한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대관령 고갯길 정상을 정점으로 완전히 한바퀴를 도는 종주가 가능합니다.

 또 제왕산 정상에서 대관령 고갯길 정상으로 이동한 뒤 백두대간 코스를 타고 남쪽 능경봉이나, 북쪽 선자령 등지로 계속 산행을 이어갈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왕산-대관령 종주나 연장 산행시에는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미리 산행지도를 보고, 소요시간을 파악한 뒤 시간 여유에 맞는 코스로 등산해야 하는 것 입니다.

 

 이제 사진을 보면서 제왕산 등산에 나서 볼까요.

 

    대관령 옛길 주차장 입니다. 지금은 지방도가 된 2차선 옛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가 대관령박물관에서 옛길로 진입하면 곧바로 이 주차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기다리는 버스가 보이죠. 대관령박물관이 이 주차장을 찾을 수 있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산 시작 후 100여m를 이동하면 계곡 등산로로 빠지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물론 찻길로 계속 걸어 직진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강릉시가 새롭게 조성한 계곡 등산로를 이용하면 산행의 운치를 배가시킬 수 있습니다.

 

   (이 이정표는 대관령 옛길 등산로를 중심으로 산행거리를 표시해놓고 있네요. 제왕산 등산로는 위쪽으로 선 표시가 돼 있네요)

 

       (양쪽 다 '대관령 옛길'로 표시돼 있는데, 차도가 아닌 왼쪽으로 빠지면 계곡 등산로를 탈 수 있습니다. 물론 차도를 따라 그대로 직진해도 안쪽 어흘리마을에서 대관령 계곡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대관령 옛길 입구 산중의 어흘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부터 제왕산과 대관령 옛길 등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는 화장실도 우주선 모양으로 되어 있는 등 우주선 모양의 시설이 많습니다)

 

 

 

 

 

 

 

 

 

 

 

 

 

 

 

   (대관령 계곡 등산로에서 흰염소를 만났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한가롭게 풀을 뜯는 것을 보니 야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대관령 옛길과 제왕산 등산로가 갈리는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제왕산은 좌측 입니다)

 

 

 

   (사실 이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저는 물이 많지않은 계곡 징검다리를 그대로 건넜습니다)

 

 

 

 

  (안내판에는 '제왕폭포'라고 돼 있는데, 이름 처럼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물이 많으면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겠죠)

  (이제 하늘로 쭉쭉 뻗은 미인 소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등산로 주변에 이런 최고의 소나무들이 정말 도열하듯 서 있습니다)

 

 

 

 

 

 

 

 

 

 

 

 

 

 

 

 

 

 

 

 

 

 

 

 

 

(임도에 도착했습니다. 3.8km를 걸어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500여m는 제왕산에서도 가장 경사가 심합니다)

 

 

 

 

 

 

 

 

 

 

 

 

(이곳 쉼터를 중심으로 소나무와 주변 경관이 일품입니다. 여기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경치도 변화무쌍 합니다. 주변 소나무가 새하얀 눈에 뒤덮여 있는 모습, 혹은 소나무 숲이 안개 구름에 휩싸여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가을철에 이곳에서 만나는 색조의 대비도 참 인상적입니다)

 

 

 

 

 

 

 

 

(제왕산 능선 마루의 전망대에 도착 했습니다. 여기서는 강릉시내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곳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주변 경관과 감흥이 달라지니, 산은 같은 산이되 등산객이 느끼고 보는 산은 언제나 처음처럼 신선하고 설렙니다)

 

 

 

 

 

 

(정상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상을 만났다고 바로 하산하면 안됩니다. 여기서부터 100여m를 더 이동하면 해발표고가 1m가 더 높은 또 하나의 제왕산 정상이 있습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낸 노송에 둘러쌓인 해발 841m, 제왕산 정상 그곳을 봐야 제왕산을 다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이 해발표고로 가장 높은 제왕산 정상입니다. 강릉시에서 세운 정상 표지판이 보이네요. 이곳은 수백년 풍상을 견딘 노거송에 둘러쌓인데다 한쪽 비탈은 암석으로 이뤄져 있어 그 자체의 풍광과 운치가 각별합니다. 주변 조망도 일품이니 정상미로는 가히 걸작이라고 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