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경묘로 들어가는 입구의 금강송 숲길. 숲길 안쪽의 넓은 터에 준경묘역이 보인다.)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모두 능묘를 향해 줄기와 가지가 기울었다. 영락없이 왕을 배알하는 신하들의 모습이다.
능묘의 주인공은 조선 태조 5대조인 양무장군(陽武將軍).사람들은 이 능묘를 준경묘(濬慶墓)라고 부른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준경묘는 500년 조선왕조 창업의 태동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곳이다.
태조의 4대조인 목조(이안사)가 한 도인의 말을 듣고 이곳에 선친을 안장함으로써 후일 태조가 탄생하고, 조선 왕조를 건국했다는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부친상을 당한 목조가 도인의 말에 따라 이곳에 묘를 쓰게 됐는데, 도인은 "소 100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황금관을 쓰면 후대에 왕이 탄생할 것"이라고 하지만, 소 100마리와 황금으로 만든 관을 구할 방도가 없었던 목조는 소 백(百)마리는 흰백(白)자에 한일(一)자를 더해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힌소 한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황금색의 귀리 짚으로 대신해 장사를 치렀다는 내용이다.
두타산에서 뻗어내린 산 줄기가 야릇하게 갈라지면서 산 한가운데에 움푹 들어간 모양으로 드넓은 터를 만든 곳에 준경묘가 둥지를 틀고 있다. 수백명이 한꺼번에 자리를 깔고 앉아도 결코 좁지 않은 곳이니 누가보아도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터의 생김새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사람들은 인근에 있는 영경묘(永慶墓,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와 함께 이곳을 천하의 길지(吉地)로 꼽는다.
영경묘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능묘로 준경묘와 짝을 이루는 곳이다.
몇년전 강원대 삼척캠퍼스에서 열린 '삼척 준경묘, 영경묘 역사문화 가치 조명과 활용방안' 심포지엄에 참석한 강원대 옥한석 교수는 "준경묘와 영경묘는 모두 천하의 명당인데, 특히 영경묘는 주변의 봉우리들이 모두 명당을 향해 조문을 드리는 형국이 마치 수천마리의 벌이 꿀을 따서 일렬로 줄을 지어 들어오는 '봉소형'의 전형적 명당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왕조 창업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는 준경묘와 영경묘 일원은 문화재청에서 지난 2012년에 국가문화재인 사적(제254호)으로 지정하면서 그 가치가 더욱 주목을 받게됐다.
준경묘 주변 산림은 또 전국 제일의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하다.
지난 2008년 불에 탄 국보 1호 숭례문(서울 도성 정문)과 광화문(조선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 복원의 중요 목재로 이곳 황장목 20그루가 제공됐고, 지난 2001년에는 이곳 '미인송'이 충북 보은의 정이품 소나무와 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이 수명이 다해 볼품이 없어지자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 종자 보존을 위해 엄격함 심사와 연구를 거쳐 국내에서 형질이 가장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았는데, 그 결과 이곳 준경묘 입구에 서 있는 미인송이 '신부'로 간택받아 혼례를 올리게 된 것이다.
미인송은 수령이 100년, 둘레가 2.1m에 높이가 32m에 달한다.
미인송이 있는 이곳 준경묘 숲은 지난 2005년에는 '아름다운 천년의 숲'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숲과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그대, 이만하면 한번쯤 들러 역사의 흥취와 깊은 솔향, 금강송의 기상에 취할만하지 않은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종친들이 준경묘에서 왕의 격식에 따라 제례를 올리고 있다)
(지난 2008년 12월 준경묘 주변 금강송 숲에서 국보 1호 숭례문 복원을 위한 소나무 목재를 벌채하기에 앞서 제례를 지내고 있다. 이 때 벌채된 소나무는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 공사에서 대들보와 추녀, 기둥 등 중요 목재로 활용됐다. 그만큼 준경묘의 소나무는 연륜이 깊고, 장대하다.)
준경묘는 삼척시내에서 태백시, 정선군으로 연결되는 38호선 국도(현재는 2차선, 4차선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를 타고 진행하가다가 미로면 활기리에서 마을 안길을 타고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서울 쪽에서 방문할때는 영월, 정선, 태백을 거쳐 삼척시 방향으로 국도를 거슬러 내려오면 된다.
활기리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산길을 따라 약 20여분 간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준경묘로 가는 산길은 처음에는 급경사로 수백m를 진행하다가 평지로 연결되는데,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통과하는 운치가 비할데 없이 즐거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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