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울릉도 독도 여행(저동-도동-태하-나리분지-내수전-봉래폭포)

좋은산 2013. 9. 1. 17:54

 

 

 개인적으로 4번째 울릉도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선 그동안 방문했던 어떤 일정보다도 날씨가 화창했던 점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한주 내내 바람 불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궂은 날이 이어지질래 이러다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출발 당일 언제 그랬냐는 긋 하늘도 화창하고, 바다도 잔잔해졌다.

 "주말에는 여행에 아무 불편 없는 날씨가 될 것"이라던 기상청 예보가 딱 들어맞았으니 과학의 힘을 새삼스레 실감한다.

 이번에는 친구 및 그 내자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사실 설렘이 더했고, 또 예약 등에 한치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도 컸다.

 드디어 출발(2013년 5월4일 오전 8시).

 멀미약을 먹고, 키미테를 붙이고 배 멀미 걱정에 요란을 떨던 친구들도 정작 바다로 나서 항해를 시작하자 "배 멀미 별게 아니네"하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하다.

 울릉도까지 3시간 항해를 즐기는 중에 그런 표정의 친구들을 향해 혼잣말을 한다.

 "짜식들, 바다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놈들이 날씨 덕분에 호강하면서 매 멀미를 우습게 보네."

 사실 해군 생활을 하면서 줄곧 배만 탄 나로서는 바다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아마추어들의 오판이 우습기도 하다.

 사람들이 인생의 역경을 말할 때 거센 풍파에 비유하는 것 처럼 바다는 사실 그 어떤 곳 보다 거칠다.

 파도가 칠 때는 높이 7-8m, 웬만한 산을 방불케하면서 군함의 2층 중갑판을 휙휙 넘어다니는 것이 보통이고, 나는 해군 함정 생활을 하면서 그런 무시무시한 파도를 무수히 경험했다. 그럴 때는 여객선이나 어선은 아예 바다로 나오지 못하고, 군함도 전장 100m 이하는 모두 항구로 피한다.

 오죽하면 바다에서는 태풍이나 풍랑주의보 때 "황천이 뜬다"고 하겠는가.

 각설하고, 3시간 항해 끝에 울릉도에 도착하니 약속대로 민박집 차량이 부두에 나와 대기하고 있다.

 울릉도는 험준한 산악 지형이 대부분이기에 부두에서 민박집까지 짐을 들고 옮기는 것이 번거울 것 같아 민박집 아주머니께 부탁을 했는데, 약속을 지킨 것이다.

 민박집은 예상외로 깨끗했다.

 우리가 묵은 '좋은이웃 민박(저동항 부근)'은 이름이 민박이지, 사실 웬만한 펜션에 못지 않았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객실 내부는 거실과 주방, 내실에 다락방까지 갖춰진 것이 아주 아늑했

 독실한 크리스찬인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께서 "다소 비좁을 수는 있지만, 금방 내부 수리를 했기 떄문에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이 상술에 의한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으로 저동항 부근에서 오징어 내장탕을 먹고 곧바로 '독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오징어내장탕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여기는 섬 아닌가"하고 자문하면서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더욱이 이제 곧 '우리 땅 독도'에 발을 디딘다는 설레임이 오징어내장탕의 부족한 부분을 금세 잊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독도에 못 내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항해사에게 "오늘 독도에 접안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날씨가 좋아 OK"라는 싸인이 돌아온다.

 앗싸.

 3전4기 끝에 드디어 독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거리는 87km이니 '독도는 우리땅' 노랫말 그대로 200리 길이다. 1시간30여분 항해 끝에 선창 너머로 독도가 모습을 나타내니 배안에 환호성이 뒤섞여 술렁인다.

 대한민국 동쪽 끝, '국토의 막내'라고 하는 독도를 처음 마주하는 승객들의 흥분과 설렘이 폭발한 것이다.

 창문 밖으로 독도경비대원들이 우리 배의 접안을 돕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먼저 클로즈업 된다.

 배 안에 있는 승객들은 잘 모르겠지만, 해군 경험을 한 나로서는 그들이 배의 접안 줄을 잡아주는 등의 도움을 줘야 배가 부두에 쉽게 접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독도에서 허락된 시간은 20분.

 

 

 

 수명백 승객들이 떼지어 독도에 발을 디디니 조용하던 선착장이 마치 무슨 장날 처럼 붐빈다. 독도의 명물이라는 괭이 갈매기도 갑자기 밀어닥친 손님들에 놀란 듯 하늘로 날아오른다.

 역시 자연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다.

 그래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한 때문인 듯 괭이갈매기들은 이내 평온을 되찾고 사람들이 던져 주는 음식물을 받아 먹는다.

 야생의 갈매기에게 음식물을 던져주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닌데,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자기가 싸 가지고 온 음식물을 거리낌없이 던져준다.

 독도경비대원들의 수고를 격려하는 의미로 사이다 1박스를 우리 친구들이 전달했다. 독도경비대원들은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사실 군(軍)이 주둔을 해야겠지만, 독도는 일본과의 특수한 사정 등을 감안해 군이 아닌 경찰이 경비를 서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곳 독도 앞바다에서 12해리는 우리 영해다. 그러나 12해리를 벗어나면 한-일중간수역, 즉 대한민국 어선과 일본 어선이 모두 어로행위를 해도 무방한 곳이다.

 지난 1990년 대 말 신(新) EEZ(배타적경제수역) 획정을 위해 한-일어업협정을 맺을 당시 독도 주변 해역의 영유권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결국 독도 12해리 외측 주변을 중간수역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東島)로 오르는 길은 서기 512년 우산국을 복속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최초로 우리역사에 편입시킨 신라장군 이사부의 이름을 딴 '이사부 길'이다. 과거 행정안전부(요즘은 안전행정부)가 새주소 명칭을 부여하면서 국민 공모를 했더니 동도 길은 이사부 길, 서도 길은 '안용복 길'로 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아 그렇게 길 명칭을 부여했다.

 이사부 길로 한번 올라갈까 하고, 선착장 길 끝 까지 발걸음을 옮겼더니 독도경비대원이 웃음 띤 얼굴로 "여기까지"라며 막아 선다. "더 이상 못가냐"고 했더니 본인도 미안하고, 쑥스러웠는지 "네"라고 속삭이듯 대답한다. 관광이나 견학을 위해 독도를 방문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선착장을 포함해 독도의 평지 공간 뿐 이었던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나니 허락된 20분이 금세 지나가고, 빨리 돌아오라고 배에서 길게 기적이 여러번 울린다.

 독도경비대원들의 거수 경례를 뒤로 하고 다시 1시간30분 동안 울릉도행.

 

 

 

 독도에 발을 디딘 만족감 떄문인지, 승객들 대부분이 잠에 취해 배안이 조용하기 그지없다.

 저녁으로 따개비 밥을 먹고, 민박집에 여장을 푸니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1시간30여분 동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바닷가로 나선다.

 뱃길로 3시간, 울릉도까지 왔는데 야경이나 밤 바닷가 풍경을 보지 않으면 뭔가 빠트리고, 손해보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생각에 우르르 바닷가로 나섰다.

 예정된 산책코스는 명성이 자자한 저동-도동-행남등대 구간.

 으슥한 수협 냉동창고를 지나 해안 방파제에 다다라 이제 깎아지른 해안단구 절벽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로 들어설 마음에 기분이 들떠 있는데, 어 조금 이상하다.

 유명한 산책로인데,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이고, 들어가는 길목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이 모두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있다. "잘못 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길목에 있던 포장마차 주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아뿔싸, 역시 산책로에 문제가 생긴 것 이었다.

 이유인 즉, 산책로 전기 조명이 고장나는 바람에 너무 위험해 당분간 밤에는 길을 폐쇄했다는 것 이었다.(물론 지금 쯤은 조명시설이 고쳐져 울릉도 바닷가 암벽길 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는 일행들이 저동항 방파제 산책에 나섰다.

  방파제에서 바라는 보는 저동항.

 육지의 큰 항구와 비교하면 작은 포구 수준이지만, 산 밑으로 건물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빛을 발하는 게 참 정감있게 다가선다.

 사실 저동항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동해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수산기지나 마찬가지다.

 오징어 철에는 울릉도 앞바다가 묵호, 주문진, 포항 구룡포 등에서 몰려간 오징어 배의 집어등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새벽이 되면 밤새 잡은 오징어가 저동항 위판장에 산더미 처럼 쌓여 할복 작업을 하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길이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 보통이다.

 산책로 탐방을 못해 다소 실망한 친구들과 함께 저동항 선착장에 다시 돌아오니 즉석 노래방에 떠들썩한 야간 어시장 풍경이 우리를 반긴다.

 꽁치 굽는 냄새가 참 매혹적이어서 우리도 구운 꽁치에 생선회 등을 구입해 바닷가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어울리니 그 또한 운치가 있다.

 밤이 너무 쉽게 깊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민박집 숙소에 돌아오니 벌써 자정이 넘었다. 코골이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여행의 즐거움 때문에 새벽 6시에 눈을 뜨니 여독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

 달랑 1개 뿐인 화장실을 놓고 아침 샤워와 세면, 배설까지 전쟁을 치른 뒤 오전 8시20분이 되니 약속대로 버스가 숙소 앞 길에서 대기중이다.

 오늘은 울릉도의 관광 행정 중심지인 도동항을 거쳐 독도박물관, 남양포구의 사자바위, 서면 태하리 황토구미, 모노레일, 태하 등대, 나리분지, 봉래폭포, 내수전 전망대 순으로 답사에 나설 예정이다.

 그런데 출발부터 일정이 삐걱거린다.

 독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독도박물관이 하필이면 4월-5월 내부 수리공사로 인해 잠정 휴관에 들어간 것이다. 독도박물관에 가면 참 들려줄 얘기가 많았는데...

 하는 수 없이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시작하니 버스 기사님의 친절한 울릉도 안내 설명이 이어진다.

 기름값이 육지보다 훨씬 비싸고, 울릉도에는 뱀이 없고, 각종 산나물이 지천 이라는 등등의 얘기에 솔깃해 다들 지루함이 저만치 달아난다.

 사자바위와 그 유명한 울릉도의 외통수 터널길 등을 거쳐 황토구미와 모노레일, 태하 등대 답사가 쉴새없이 이어졌다.

 특히 황토구미는 울릉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 이라는 점에서 빼 놓을 수 없다.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동해안에서 출발한 배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울릉도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황토구미 일원의 서면 태하리였고, 조선 숙종 이후 우리 조정의 울릉도, 독도 정책이 수토(搜討-수색해서 왜인들이 있으면 토벌함)로 바뀐 뒤 3년에 한번씩 울릉도 수토에 나섰던 삼척영장과 월송만호들이 울릉도를 다녀 온 표시로 떠 가던 흙이 바로 이곳 항토구미의 붉은 흙 이었다.

 울릉도 수토는 당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 이었다. 무동력 범선으로 이틀 걸리는 뱃길 항해를 해야하는데다 갑자기 풍파를 만나 배가 난파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실제로 울릉도 수토 항해에 나섰다가 수군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거나 표류한 일도 적지 않았다. 실록 등 옛 사료에는 그렇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은 선군(船軍) 들을 애도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는 등의 기록도 등장한다.

 이렇게 위험하기에 울릉도 수토 항해를 회피하려는 현상이 나타나자 조선 조정은 수토관 일행(한번에 1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큼)이 울릉도를 다녀왔다는 증거로 이곳 황토구미의 붉은 흙과 자생 식물 등을 수토 보고서와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황토구미의 흙은 인주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울릉도만의 특징적인 토질 성분이 있기에 울릉도 수토의 확인 증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어진 태하 등대지구 탐방은 해안단구, 수직 절벽의 꼭대기 위치한 지리적 여건상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물론 모노레일 옆으로 사람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오를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된비알 깔딱고개 이기에 관광객들은 거의 99% 모노레일을 탄다고 봐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울릉도가 자랑하는 동백꽃 산책로가 수백여m 길게 이어지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태하등대와 향목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울릉군 서면 태하리 해안 전경. 조선시대 울릉도 순찰에 나섰던 수토관들이 도착하던 곳 이었다. 해안 곳곳에 각석 등 수토관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태하등대 향목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릉도 해안의 절경. 국내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치라고 한다)

 

 (항해에 적합한 바람을 기다리던 대풍감 해안의 활홀경)

 

 (태하리 해안에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관들이 남긴 각석문)

 

 태하등대와 향목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해안선의 풍광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경치 그대로 정말 일품이다. 아찔한 해안절벽의 꼭대기 위에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관광객들은 예외없이 탄성부터 터뜨린다.

 반대편,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과거 조선시대에 울릉도 항해를 하던 수토관 등 선원들이 항해에 적합한 순풍을 기다리던 '대풍감'도 보인다. 둥근 반원을 그리면서 바다 쪽으로 제법 길게 뻗어나간 수질 절벽의 암벽지대가 눈길을 사로잡고, 아찔한 절벽 위에서 티없이 투명한 바닷물 속 활홀경을 들여다보는 스릴과 즐거움도 비길데 없다.

 태하 등대지구 방문을 마치고 나니 점심을 예약한 나리분지 식당(산마을식당)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예정대로 12시에 도착하나요?"

 시간을 보니 정시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준비를 해 달라고 하고, 그대로 나리분지로 직행.

 울릉도 전통 너와 지붕으로 만든 식당 건물의 향토색 짙은 폼새가 일단 마음에 들었는데, 통나무 탁자 위에 산채 비빔밥이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져 있어 입맛까지 당긴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산채 비빔밥은 나도 마음에 들고, 친구들도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 내심 흡족하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 아래 산중턱에 형성된 나리분지는 가파른 산악지형인 울릉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만나는 분지형 평지(가로 1.5km에 세로 2km)로, 폭설이 많은 울릉도의 기후 특성상 겨울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쌓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분지 전체가 완전히 눈에 파묻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가 방문한 5월에는 이미 봄기운이 완연했기에 성인봉 정상 부근에 약간의 잔설이 남아있을 뿐 이었다.

 다음 행선지인 봉래폭포와 내수전전망대로 가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이동했던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나리분지에서 봉래폭포가 있는 저동항까지는 지도상 거리는 그리 멀지않은데, 아직은 단거리 이동로가 없다. 울릉도는 아직 섬 일주도로가 개통이 안된 상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리분지까지 갔다가 울릉도 중심지역인 도동이나 저동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불편이 불가피하다.

 봉래폭포는 물이 많은 울릉도의 수원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쾌한 물줄기와 원시림이 매력적이고, 내수전 전망대는 내려다보는 경치 구경에 눈이 호강을 하는 곳이다.

 

 (저동항 근처 계곡을 따라 30여분간 도보 이동을 하면 만나게 되는 봉래폭포)

 

(내수전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릉도 저동항 일원의 해안 풍경)

 

 울릉도 앞 죽도는 물론 저동과 행남등대의 풍경화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날씨가 맑을 때는 200리 밖 독도까지 조망을 할 수 있는 곳 이기도 하다.

 오징어 철, 일몰 무렵에 이곳 내수전전망대에 오르면 울릉도 앞바다에 핀 어화(漁火)가 정말 장관이다. 수백척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저마다 집어등 불빛을 밝힌 밤바다를 한번 상상해보라.

 나는 운 좋게도 지난 2007년 초가을에 울릉도 방문 때 그 장관을 본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새벽 울릉도 저동항에는 정말 산더미 같은 오징어가 쌓였다.

 여러번 다녀왔는데도 절대 질리거나 물리지 않는 곳이 울릉도다. 물론 불편한 점도 적지않지만, 여행은 어차피 불편을 먹고 더 큰 추억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 아니가. 동해바다 한가운데 망망대해 중에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는 것, 또 그 섬이 우리 땅이라는 것으로 인해 울릉도는 다녀올때마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