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첫 눈을 맞았습니다.
현재 시각 11월19일 밤 10시01분. 사진부 당직자가 편집국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눈이 와요"라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눈은 매년 겨울이면 오게 마련인데, 첫 눈은 항상 사람들을 설레게 합니다. 그래서 "반갑고, 웬지 모르게 기쁘다"는 표현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 같습니다.
눈 사진 찍으러 카메라를 챙겨 뛰어 나간 사진부 서영 차장을 뒤따라 나도 모르게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 따라 나갔습니다.
정말 펑펑 눈이 내렸습니다. 머리에 금방 하얀 눈이 쌓일만큼...
회사 앞 가로등 불빛에 함박눈이 투영되니 금새 밤거리가 밝아지는 느낌입니다.
자세히 보니 어둠속에서 수습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눈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이네요.
하루의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눈이 큰 청량감을 선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설(瑞雪)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요.
불현듯 빛바랜 흑백 필름 처럼 남아있는 어릴적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지만) 5학년 때 였을 겁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월급날에 스케이트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대부분 너나없이 넉넉지 못하고 고단하던 때, 그때는 정말 스케이트 1개 가져보는 게 개구쟁이 들이 꿈 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앉은뱅이 썰매 하나만 있어도 우쭐해지던 시절이었으니 스케이트는 정말 보물이 굴러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다음 날 그 스케이트를 폼 나게 탈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오늘 처럼 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아,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논 바닥 얼음위에 눈이 쌓이면, 그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스케이트는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무지막지한 꾀를 냈습니다.
"그래 얼음 위에 쌓이는 눈을 다 치워 버리자"
그리고는 빗자루와 가래(눈을 치는 도구)를 들고 한밤에 얼어붙은 논을 찾았습니다.
함박눈이 쌓이면 치우고, 그렇게 서너시간은 고생을 했을 겁니다.
그 추운 날에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더니 금새 온몸이 땀에 젖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줄 몰랐습니다.
눈 쌓인 얼음판 위로 내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그리고는 새벽 같이 일어나 밤새 치운 얼음 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기뻤습니다.
아버지께서 스케이트를 사 가지고 오시던 날 내리는 눈은 정말 야속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기쁨을 맛 보았으니 제가 어찌 눈 오는 밤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눈 내리는 밤거리에서 어릴적 추억의 스케이트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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