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일시: 2013년 10월12일 토요일
*코스: 소공원 주차장-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고개-양폭-천불동 계곡-비선대- 소공원 주차장(20km)
*산행 시간: 오전 5시4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11시간50분.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가히 최고의 경치로 꼽히는 1275봉의 위용과 단풍. 1275봉 주변의 암릉 사이로 곱게 물든 단풍에 홀려 한동안 감탄사만 흘릴 뿐이다)
(공룡능선의 최고 전망터인 신성본에서 뒤돌아 본 공룡능선. 암릉 미학의 극치 앞에서 산행의 피로가 저만치 달아난다)
지난 10월12일(토요일)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시 다녀왔다
6월말 나 홀로 산행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바람에 경치를 즐길새도 없이 능선을 통과하기에 바빴으나 이번에는 더없이 쾌청한 하늘 아래 자연이 빚은 최고의 경치를 즐겼기에 아직도 공룡능선 한가운데 그대로 서 있는 듯 산행 뒤 감흥이 강렬하기 이를데없다.
더구나 지금은 단풍이 거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때.
4.9km 능선에 우후죽순 처럼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솟아 나 연봉 군(群)을 이루면서 암릉 미학의 극치로 손꼽히는 공룡능선에 화려한 단풍 채색까지 더해졌으니 능선에 발을 들여놓은 것 만으로도 '산꾼들의 로망'에 날개를 단 격이나 다름없다.
단풍은 일반적으로 산 전체의 80%가 물들면 절정기로 꼽는다.
설악산은 지금 공룡능선을 거쳐 천불동 계곡 중간 쯤 까지 단풍이 내려섰으니 이번 주말(10월19일) 쯤 절정기를 맞을 것이다.
(이제 출발이다. 랜턴 불빛을 밝힌 한무리 산악회원들이 어둠을 헤치며 설악산 등산길에 오르고 있다)
우리 일행 3명은 새벽 5시40분, 사위가 아직 어둠에 잠들어 있는 때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을 출발, 오후 5시30분에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꼭 11시간 50분이 걸렸다.
산행 코스는 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고개(희운각)-양폭-천불동-비선대- 소공원주차장으로 이어지는 20km.
지난번에는 천불동을 거쳐 무너미고개에 오른 뒤 공룡능선을 탔으니 이번에는 지난번 산행과는 역순으로 진행되는 코스다.
새벽에 랜턴 불빛을 비추면서 공원을 출발했는데, 비선대 쯤에 다다르니 벌써 동녘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이렇게 빨리 동이 트다니...
마등령 능선에 올라 일출을 보려던 계획은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비선대에서 희운각 방면과 마등령 방면 등산로가 갈리는 지점)
그러나 동이 터 오르자 하늘은 그지없이 쾌청한 진푸른 빛이다. 새벽에 소공원 주차장에서 본 하늘에 별이 무수히 박혀 있더니 이렇게 깨끗한 날씨를 연출해 낸 것이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는 거리가 3km지만, 그냥 산책로 수준이다.
본격적인 등산은 역시 비선대에서 부터 시작된다.
비선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길이 두갈래로 나뉘는데, 쪽문을 통해 계곡 안쪽으로 들어서면 천불동-양폭-희운각으로 이어지고, 산길 오르막으로 발을 내딛으면 마등령으로 통하는 등산로다.
계획대로 마등령 쪽으로 길을 잡으니 된비알 오르막 돌 계단의 연속이다. 40-50분 오르막 계단을 올랐을까. 마등령으로 통하는 산줄기 능선에 접어드니 저 멀리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맑은 날씨 덕분에 오늘 눈이 호사를 하게 됐다.
그 뒤로 마등령까지는 산길을 따라 오르막 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처음 돌계단을 오를 때 보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고, 또 중간중간에 산 허리를 타고, 평탄하게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기에 그런대로 등산의 흥취에 취할만하다. 더욱이 지금은 단풍 절정기여서 등산로 주변의 단풍이 햇빛을 받아 보석 처럼 반짝이는 희한한 광경을 즐기는 것도 마등령 등산의 즐거움을 더했다.
마등령 가까이에서 만나는 샘물로 목을 축이고, 멀리 호남(정읍)에서 왔다는 70대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말을 섞으며 마등령에 도착하니 먼저 온 등산객과 공룡능선을 빠져 나오는 등산객이 한데 어울려 떠들썩하다.
(마등령 가는 길에 바라본 공룡능선, 가운데 우뚝 솟아나온 봉우리가 그 유명한 1275봉이다)
(마등령 정상, 예전에 속초 사람들이 인제로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라고 하는데, 해발 표고가 1320m나 된다. 우리가 출발한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의 해발 표고가 기껏해야 100m 남짓일테니 마등령을 오른 것 만으로도 큰 산 하나를 등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오전 9시가 채 안된것 같은데, 벌써 공룡능선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은 뭔가? 궁금해서 물어 보니 거의 새벽1-2시쯤에 오색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넘어 공룡능선을 탔거나 중청, 희운각 대피소 등에서 잠을 잔 산객들이다.
참, 다들 부지런하고, 극성스럽다.
저들은 아마 새벽 어둠속에서 공룡능선에 들어서 중간쯤에서 일출을 맞았으리라.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헉헉대는 고된 산행이고, 땀 깨나 빼야하는 '고행길'인데도 산객들은 그렇게 산이 좋아 랜턴 불빛에 의지하는 야간 산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마등령에서는 오세암 가는길과 공룡능선 길이 갈리는데, 우리 일행의 전진로는 역시 공룡능선.
(마등령에서 본 공룡능선. 아침 햇살이 눈 부시다. 오른편에 솟아난 봉우리가 공룡능선의 1275봉. 공룡능선 뒤로 화재봉 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다.)
(공룡능선 입구에서 본 속초시내와 동해바다. 왼편 산 위로 삐죽 솟아나온 봉우리가 세존봉이다)
(공룡능선 입구는 비교적 평탄하다. 그러나 얼마안가 곧 암벽의 급경사 비탈면과 오르막내리막 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공룡의 등날을 타고 걷는데 능선 길이 평탄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몸 속 노폐물을 땀으로 빼면서 경치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고 즐거운 산행이 된다)
(암릉 사이로 난 등산로 이동은 계속되고. 공룡능선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암벽 비탈면. 쇠줄에 의지해 이동해야 한다. 보기에는 다소 아찔해 보이는데, 실제로 경험하면 웬만한 사람은 모두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다)
(다시 뒤둘아보니 세존봉이 뚜렷하다)
(일행 두분이 앞서가는데,등산로 옆으로 단풍 잔치가 요란하다)
(암벽 사이로 난 외통수 길에서 등산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오르내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쇠줄에 의지해 암벽 경사면을 내려오는 등산객들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기다리는 동안 눈 앞에는 1275봉의 웅장한 장관이 시선을 압도한다. 등산로는 저 암릉을 그냥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돌아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나 있으니 봉우리 위용만 보고 긴장항 일은 아니다. 그저 경치에 감탄하고, 부지런히 걷기만 하면 된다)
공룡능선의 대표선수 격인 1275봉이 칼 처럼 우뚝 솟아있는 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연봉들이 눈을 홀리니 어서 저 황홀경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더 지체할 새가 없다.
맑은 날, 찾은 공룡능선은 눈부신 나신 그대로였다. 마치 고생한 산객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려는 듯.
나한봉, 1275봉 등 유명한 공룡능선의 봉우리들을 차례로 지나가는데, 역시 공룡은 공룡이다.
'공룡의 등날' 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 붙여진 공룡능선의 봉우리들을 줄줄이 타고 넘어야 하기에 중간중간에 쇠줄에 의지해야 하거나 바위 틈으로 한 두사람이 겨우 빠져나가는 험한 통행로가 한두군데가 아니다.
쇠줄을 붙잡고 급경사 암벽을 타고 오르거나 내려서야 하는 곳에서는 산객들이 몰리는 단풍철 답게 지체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특히 1275봉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외줄 경사지에서는 5m 정도 경사지를 통과하는데 무려 20-30분간 지체가 이어졌다. 10명-15명씩 자율적으로 끊어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데 산악회 별로 이동하는 팀들은 15명이 이상이 같이 통과해야 하기에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바위 경사면을 오르던 50대 등산객이 기우뚱하면서 배낭에서 막걸리 한통이 빠져나와 계곡 비탈면으로 굴러가는 상황도 연출됐다. 그분이 다시 경사지를 내려와 30여m 밑 수풀까지 내려간 뒤 기어코 막걸리를 되찾아오자 지체현장에서 기다리던 등산객들 사이에 박장대소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칫 미끄러지면, 큰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는데, 그 막걸리 1병을 찾겠다고 경사로를 다시 타는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다니 참 술을 좋아하는 분인 것 같다.
지체 현상이 발생한 곳이 공룡능선에서 가장 유명한 1275봉 바로 앞 이어서 기다리는 동안 1275봉의 엄청난 위용을 찬찬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
(이어지는 공룡능선의 등산로와 암벽 사이로 피어난 단풍. 가을 산에서만 맛불 수 있는 멋이 제대로 연출되고 있다)
(1275봉 근처에서 만난 직벽의 위용. 바위 절벽 사이로 저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우리와는 반대편 무너미 고개에서 출발한 등산객들이 1275봉으로 연결되는 된비알 비탈면을 오르고 있다.길이가 긴데다 경사도 심해 이 비탈면이 능선을 종주하는 산객들에게는 참 힘든 지점이다)
(이어지는 공룡능선의 각양각색 등산로. 다양한 등산로 풍광이 산행의 힘겨움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속초시내로 뻗어내린 아름다운 암봉 능선과 자연이 빚은 거대한 예술 앞에서 넋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곳이 공룡능선이다)
(맞은편 설악의 최고 비경인 용아장성 산줄기 너머로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 줄기가 펼쳐지고 있다 )
공룡능선은 거대한 암봉 봉우리들 옆 또는 비탈면, 바위 틈 사이로 이동로가 개설돼 있는데,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약간의 긴장을 동반하는 쇠줄 급경사로 보다는 길게 내려갔다가 다시 만만치 않게 이어지는 오르막 경사로를 이동하는 고행이라고 할 수 있다.
능선 종주로 가운데 3-4곳은 수백m씩 오르막 이동을 해야 하는데, 긴 경사로의 경우 웬만한 산 하나를 등산하는 체력 소모가 발생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동 중에는 용아장성과 화채봉능선, 서북능선은 물론 대청봉과 올산바위, 속초시내, 동해 바다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설악산 비경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용아장성을 가장 가까이 조망하면서 이동하는 것도 공룡능선 산행의 큰 즐거움이다.
이런 매력에다 단풍 절정기의 황홀한 채색까지 더해지니 매년 10월 단풍철에 전국 각지에서 무박산행의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는 등산객들이 몰리는 것이다.
공릉능선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신선봉은 설악의 진경과 공룡능선 전체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터라고 할 수 있다.
신선봉에 오르면 멀리 세존봉, 마등령부터 그동안 지나온 능선의 봉우리들이 한폭의 거대한 암릉 동양화 처럼 겹겹이 펼쳐지는데, 이미 지나온 사람들은 "우리가 어찌 저 칼 같은 봉우리들을 지나왔던가"하는 뿌듯함에 젖는가 하면 이제 막 본격적으로 공룡능선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들은 "저곳을 정말 내 두발만으로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어서 저 최고의 풍경화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는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룡능선을 빠져 나오면 무너미고개다. 희운각을 거쳐 대청봉으로 오르거나 양폭, 천불동으로 하산하거나 공룡능선으로 진입하는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갈라진다.
(공룡능선을 빠져 나와 무너미고개에 도착하기 직전에 만나는 마지막 암벽 비탈면 경사로. 약 30여m 정도를 쇠줄을 붙잡고 이동해야 하는데,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공룡능선의 경우 주로 오전 시간대에 등산객이 몰리다가 오후 2시 쯤이 지나면 마주오는 등산객을 거의 보지 못하게 되는데, 5km 정도의 암릉 지대 능선을 통과한뒤에도 소공원주차장까지 꽤 긴거리(마등령에서는 6.5km, 무너미 고개에서는 8.3km)를 더 이동해야 하는 시간,거리상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즉 낮의 길이가 짧은 가을, 겨울철에 오후 2시가 넘어 공룡능선에 들어간다고 하면 일몰 전에 주차장에 도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공룡능선을 종주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 종착지면서 공룡능선 출발지이기도 하다)
(양폭, 천불동 계곡의 이어지는 폭포들. 단풍 채색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예술이 따로 없다)
공룡능선의 시작이면서 종착지인 무너미고개에서 양폭-천불동- 비선대로 이어지는 구간은 계곡미의 절정을 보여 준다.
계곡 전체를 수놓은 거대한 암벽과 기암괴석, 폭포의 장쾌한 행진이 자꾸 산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산객들 중에 다리를 저는 사람이 적지않다. 이곳을 내려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청봉을 넘었거나 공룡능선을 탄 사람들인데, 그만큼 등산의 후유증이 컸다는 것을 실감케하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무릎 보호대와 지팡이 등을 반드시 준비하고 등산하는 것이 좋다.
비선대에 도착하니 이제 긴 산행이 끝나간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다음 산행은 어디로 할까. 공룡능선의 경치에 취한 뇌가 벌써 다음 행선지를 꿈꾸고 있으니 오늘 산행도 힘들었으나 제대로 힐링한 것이리라.
*그런데 여기서 문득 일어나는 한가지 의문.
왜 공룡능선에는 그 많은 철계단 길이 단 한곳도 없을까? 철계단을 놓으면 험한 능선을 더 쉽게 이동할 수도 있을텐데.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공룡능선에는 철계단이 없는 것이 맞고, 앞으로도 생겨서는 안된다.
철계단을 놓는 순간, 공룡의 등날은 자연의 매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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