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한여름에 등산을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 고봉준령의 대표격인 백두대간을.
“더위 먹었냐. 제정신이냐”는 얘기를 들을 법도 하지만. 한여름에도 백두대간 고봉준령의 장쾌한 행진 속으로 빠져드는 ‘꾼’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열치열 이라는 전통적 수사로는 삼복염천 아래 감행되는 등산을 이해하기 어렵다.
백두대간 능선과 그곳이 품고 있는 계곡과 숲. 문화유산의 참 멋과 맛을 아는 사람들만이 한여름 등산의 매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강릉 곤신봉에서 선자령-대관령 방향으로 뻗은 백두대간)
(강릉 석병산에서 동해쪽으로 바라본 능선의 물결)
백두산에서 시작해 남쪽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길이가 무려 1400㎞에 달한다.
그 대간의 허리. 척추쯤에 강릉이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야생 생태계의 보고이지만. 강릉의 백두대간은 그 가치가 더욱 각별하다.
최남단 옥계면의 석병산에서부터 시작해 삽당령과 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선자령∼곤신봉∼황병산∼노인봉∼진고개∼동대산으로. 동해와 정선. 평창. 양양 등지를 경계로 이어지는 강릉의 백두대간(80여㎞)은 우리나라 산악 경관의 집약판이나 다름없고. 자연·문화자원 또한 넉넉하기 이를 데 없다.
석병산. 그 아찔한 천애절벽 암릉 위에서 세상을 향해 호기를 부려도 좋고. 대관령∼선자령∼곤신봉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능선의 초원위에서 노스텔지어. 향수에 젖어보는 멋도 일품이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숲길에서는 유년기 동심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대간 능선이 품고 있는 스토리 보따리는 무릎베개 할머니의 옛날 얘기처럼 흥미진진하다.
(강릉 대관령 옛길 등산로의 주막터)
“한여름에 등산을 하면. 그 더위를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오판이다.
땀 한 움큼을 쏟아내고 고봉 능선의 산마루에 올라서면 거칠 것 없는 일망무제. 사방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 산맥의 용틀임이 파도치듯 발 아래 펼쳐지고.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파고드니 더위는 씻은 듯 달아난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능선의 숲이나 계곡에서는 시원하다 못해 한기를 느낄 때도 있으니 이런 피서지를 세상 어디서 또 구하겠는가. 한뎃바람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세찬 비 그대로 맞으면서 바위틈과 비탈면을 가리지 않고 피어난 야생화는 강릉의 여름 백두대간을 ‘천상의 화원’으로 만들었다.
대간 마루에서 동해바다를 향해 내닫는 산줄기와 그 속에 깃든 계곡의 매력은 더욱 강렬한 유혹이다.
대관령. 소금강 등의 명품 계곡 속에는 조물주가 빚은 자연의 황홀경에 더해 누천년 역사를 거름 삼아 전승돼온 얘깃거리도 즐비하다.
(한여름 강릉 대관령 계곡)
(대관령 동쪽에서 최고봉인 강릉 제왕상 정상)
율곡 선생과 어머니 신사임당의 발자취에서부터 산성을 쌓고 외적에 맞서 싸운 선조들의 지혜. 신(神)이 된 거인들의 신화. 어명을 받고 잘려나간 소나무 등등. 웬만한 바위나 나무 한그루에도 탐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갖가지 사연이 배어있다.
수십. 수백번 그 산과 계곡을 오른다고 해도 탐방객에게는 때마다 다른 산과 계곡이다.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생김새가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는 ‘자연과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개 구름이 살포시 내려앉은 여름 녹음의 그윽한 신비. 계곡의 물빛마저 바꿔버리는 가을 단풍의 현란한 몸부림. 오직 순백만이 허용되는 ‘설국(雪國)’ 별천지. 그리고 그 겨울왕국에 몰아치는 칼바람까지. 강릉의 백두대간은 365일이 모두 감탄사로 채워지는 각각의 작품이다.
이즈음. 강릉의 백두대간은 우거진 녹음이 하늘을 가렸고. 오직 솔바람 만이 주인 행세를 하니 여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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