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나의 힘

폭설 직후 동해 무릉계곡 산행(삼화사- 관음암)

좋은산 2014. 2. 15. 23:45

 

 

  

 

 

무려 9일 간 줄기차게 퍼붓던 눈이 그친 주말, 동해시 무릉계곡을 찾았습니다.

 너무 많은 눈이 내린 탓에 무릉계곡까지 이동하는 길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래도 폭설이 뒤덮인 산을 보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무릉계곡의 설경은 예상대로 눈부셨습니다.

 계곡의 경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찬탄을 불러 일으키는데, 기록적인 폭설의 설경까지 더하니 '장관'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번에 동해안에 내린 눈은 강릉을 기준으로 최고 150cm가 넘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눈이 내린 날이 지난 6일-14일까지 무려 9일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난 1911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동해안에서는 최장 기간 폭설이랍니다.

 지난 1969년에도 9일간 눈이 내린 적이 있지만, 이번 눈은 최심적설(실제 지면에 쌓인 눈의 최대 깊이)이 110cm에 달해 지난 1969년의 최심적설 보다 0.3cm가 많았으니까 최장기간 폭설 기록을 갈아 치웠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입니다.

 (물론 이번 눈은 최장기간 폭설 기록이지만, 적설량 기준으로 동해안에서 역대 최고는 아닙니다.)

 

 그런 눈이 산천을 뒤덮었으니 등산로가 온전할리가 없겠죠.

 무릉계곡 입구에 들어서니 '입산통제'라는 안내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어, 산에 못 오른다는 것인가?"

 내심 걱정하면서 관리사무소에 도착히니 어디까지 갈거냐고 묻네요.

 "관음암까지만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들어가라고 합니다. 관음암은 무릉계곡고 입구 관리사무소에서 2km가 채 안되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가벼운 등산 코스입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 산책 삼아 제가 자주 오르는 등산로죠.

 

 

 

 

 

 

 

 

 

 

  

 

    (두타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삼화사의 설경입니다)

 

 

 

 

 

 

 

 

 

 

 

 

 

 

 

 폭설에 뒤덮인 계곡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경치가 또 있을까요.

 바위와 나뭇가지, 산 능선, 절집의 용마루까지 보이는 모든 사물이 눈으로 한껏 치장을 하고 산객을 맞습니다.

 하얗다 못해 하늘의 푸른빛을 띤 먼산 능선의 설경은 또 얼마나 황홀한지.

 단청 위로 곱게 켜켜이 쌓인 눈 아래 더욱 선명해진 삼화사, 관음암 절집의 추녀 선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폭설에 뒤 덮인 절집 가람의 깨끗하기 이를데 없는 고요는 발을 쉽게 떼어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따금 나무 위에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숲속에 토끼길 처럼 난 눈길을 헤치고 나가는 재미는 또 얼마나 신나는지.

 

 

 

 

 

 

 

 

 

 

 

 

 

 

 

 

 

 (두타산 산줄기 중턱에 자리잡은 관음암의 다양한 눈 풍경입니다)

  (관음암에서 반대편, 두타산성 쪽 산줄기를 바라 본 모습입니다)

 

 두타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중턱에 자리한 작은 암자, 관음암에서 잠시 이른 봄볕을 마음껏 즐깁니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설국의 반사경이 마음에 더할 수 없는 평안을 선물합니다.

 함께 간 친구는 절집 마루에 누워 한 잠 자고 가고 싶다고 합니다.

 관음암 암자는 처마끝까지 눈이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예 눈에 파묻혀 있습니다. 마당에 쌓인 자연설의 높이를 보니 족히 어른 가슴 높이는 됩니다. 

 지붕에서 쏟아져 내린 눈에 기와 골 문양이 선명한 것도 참 이색적 입니다. 1m에 달하는 눈이 지붕에 쌓이다 보니 무게 때문에 기와 골 문양이 그대로 새겨진 채 눈이 쏟아져 내린 것 입니다. 쏟아지면서도 눈이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처마에서 마당까지의 높이가 그리 높지않은 작은 암자이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절집 작은 마당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더 전진하려고 했더니 삽으로 마당의 눈을 치던 산객들이 더 갈 수는 없다고 합니다.

 폭설 이후에 러셀이 된 곳은 관리사무소에서 관음암까지 뿐 이라는 것 입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으나 오늘은 설경의 극치를 만끽했으니 이 정도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무릉계곡 입구 주차장 쪽으로 나 있는 쪽길을 보니 이번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느지 실감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