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나의 힘

태백산 문수봉 코스 설산(雪山) 산행기(당골-문수봉-천제단-당골)

좋은산 2013. 12. 14. 23:25

 

 

 

 태백산에 눈 잔치가 요란하게 벌어졌을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틀림이 없었습니다.

 순백의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눈꽃과 상고대의 터널.

 등산을 시작할 때 더없이 화창했던 날씨가 정상 능선에 발을 디딜 때 쯤에는 눈보라까지 뿌리는 악천후로 바뀐 것이 내내 아쉬웠지만, 그런 날씨에 만나는 태백산 상고대는 맑은 날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었습니다.

 마치 흑백의 수목화나 그 옛날 흑백 필름이 더욱 진한 울림을 남기듯이.

 

 요 며칠, 산간지역에 눈 소식이 여러번 들리길래 오늘 산행 코스를 태백산으로 잡았습니다.

 2013년 12월 14일.

 겨울산 하면 역시 태백산이기 때문이죠.

 태백산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역시 겨울입니다. 그냥 겨울이 아니라 심설이 쌓인 겨울 입니다.

 눈이 쌓이고, 수은주가 뚝 떨어져야 문수봉-천제단-장군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의 능선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나뭇가지마다 얼음 결정, 상고대가 앞다퉈 피어나 햇빛에 투명하게 반사되고, 칼바람 끝에 매달린 눈꽃송이가 1500m 능선에서 지상 최고의 잔치판을 벌여야 비로소 태백산 산수화의 진수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태백산은 '살아 천년, 죽어 쳔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주목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산 입니다.

 태백산 고지대에 오르면 곳곳에 아름드리 주목이 널려 있습니다.

 얼마나 긴 생명을 살았는지, 굵은 나무 기둥이 거의 뼈대만 남이 있는데도 꿋꿋하게 푸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주목의 기상은 겨울산 모든 상록수의 멋과 기품을 압도합니다.

 이미 말라 죽은 고목이라도, 그것이 주목의 고사체라면 나무의 기품은 격이 다릅니다.

 그런 천년의 상록수들이 칼바람 한설을 온 몸으로 이기면서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그 어떤 웅변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섭니다.

 오늘 태백산 풍경이 꼭 그러했습니다.

 비록 눈보라 때문에 장엄하기 이를데없는 태백산 설산의 원경 전체를 조망할 수는 없었지만, 눈 돌리는 곳 마다 상고대, 발길 닿는 곳 마다 눈꽃송이가 쉴새없이 인간의 눈을 유혹했습니다.

 높은 산에 올랐는데, 마치 바닷속 산호숲 처럼 피어난 순백의 상고대와 눈꽃 때문에 산과 바다를 모두 경험한 기분입니다. 

 

 태백산은 겨울 칼바람이 또한 매우 유명한 곳 입니다.

 겨울산 고봉은 대부분 칼바람을 피할 수 없겠지만, 저는 소백산, 설악산과 함께 태백산의 칼바람을 최고로 칩니다.

 따라서 태백산 등산시에는 방한복, 방한모, 얇은 장갑, 두꺼운 장갑, 마스크 등 몸을 데울 수 있는 보온 장구를 있는대로 챙겨야 합니다. 아이젠과 스패치는 물론 필수죠.

 오늘도 해발 1400여m, 문수봉 갈림길 능선에 도착하면서부터 칼바람과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눈꽃의 현란한 유혹이 없었다면, 아마도 문수봉(1517m)에서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든 바람을 맞는 순간에 그대로 발길을 돌려 하산길을 재촉했을지도 모를 만큼 태백산의 겨울은 맵디 매웠습니다.

 특히 태백산의 상징인 천제단(1567m)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세찬 눈보라 때문에 수십m 앞 천제단의 형태도 제대로 분간키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사실 추위와 바람을 견디기 어려워 대부분의 산객들이 인증샷 사진만 찍고 내려가기가 바빴으나 눈보라 속 희미한 천제단은 더욱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는 것 또한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무릎까지 눈이 푹푹 빠지는 능선 위에서 산객이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앞사람의 수고로 헤쳐진 외길 뿐 입니다.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 밭 입니다.

 너덜 바위 길에서는 미끄러지거나, 바위 틈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눈 쌓인 고산 능선에서는 잠시 몸을 쉴 곳도 마땅치 않은 것 입니다.

 그런 상황이니 여유있게 점심식사를 즐긴다는 것은 겨울산에서는 거의 불가능 합니다. 물론 산불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버너 등을 이용해 밥을 해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으나 웬만큼 따뜻한 날이 아니면 준비 과정에서 추위를 견디기 어렵습니다.

 컵라면 하나를 잠시 데워 먹는데도 손가락 끝이 마치 떨어져 나갈 듯 얼얼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니, 눈보라 휘몰아치는 고산에서는 라면 하나를 먹는 일도 거의 전쟁에 가깝습니다.

 물론 고산에서 비박을 하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마니아들도 있지만,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웬만큼 숙련되지 않고서는 겨울 고산에서 비박은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맹추위에 고산을 등산할때는 가급적 출발 전에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에 산에 오르고, 칼로리 보충용 먹거리를 준비해 그때 그때 필요시에 쉽게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오늘 태백산 등산은 칼바람 추위와 눈 내리는 악천후까지 모두 감내한 고된 산행이었지만, 특별한 눈꽃을 즐겼다는 점에서 산행의 풍경화는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행 코스: 당골 광장-(4.3km)문수봉- (3km)천제단- (4.4km)당골 광장

 *산행 시간: 오전 11시15분- 오후 4시15분, 총 5시간

 

 

 

 

 

 

 

 

 

    (당골 주차장에서 시작해 이제 중간 쯤 왔습니다. 소문수봉 쪽으로는 입산이 통제돼 있네요)

 

 

 

 

 

 

    (이제 문수봉 300m 직전의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소문수봉, 문수봉 길 등이 갈립니다)

 

 

  (저쪽이 소문수봉인데, 역시 이곳에서도 입산이 통제돼 있네요. 들어가지 말라는 곳은 안가는 것이 좋습니다)

 

 

 

 

 

     (문수봉 입니다. 큰 돌탑이 인상적인 곳인데, 날씨가 맑으면 주변 조망도 매우 좋습니다. 멀리 천제단 능선이 눈에 들어 옵니다. 순간적으로 나타난 맑은 하을 아래 돌탑을 찍었는데, 파란 하늘색이 참 곱습니다. 겨울산은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화가 무쌍합니다)

 

 

    (지나온 문수봉이 보입니다. 이제 천제단으로 향하는 능선을 본격적으로 탑니다)

 

 

 

 

 

 

 

 

   (눈꽃 터널을 지나 태백산 최고의 포토존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신령스런 자태의 주목 입니다. 태백산 주목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을만 하죠. 등산로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으니, 태백산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만 합니다. 기개와 기상에 어떤 찬사를 바쳐도 다 잘 어울립니다)

 

 

 

 

 

 

  (천제단 바로 밑 지점인데,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깥 기온이 영하 15도, 체감기온은 영하 20도는 될 것 같은데 참 대단한 분들 입니다)

 

 

 

 

 

 

   (태백산의 상징, 가장 영험한 곳인 천제단에 도착했습니다. 눈보라가 너무 세차게 휘몰아 치니 천제단의 영적 기운이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태백산 천제단 등산은 당골에서 직행하는 코스(편도 4.4km)나, 유일사 매표소에서 오르는 코스(편도 4km) 가 많이 이용되지만, 저는 주로 당골에서 문수봉에 오른 뒤 능선을 따라 천제단으로 이동하는 코스를 선호합니다.

 유일사 코스는 워낙 많은 산객들이 몰리는 코스여서 제대로 산행을 즐기기 어려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봄 여름 가을에 짧게 태백산 천제단을 왕복하는 때는 유일사 코스를 많이 이용합니다.

 그러나 눈 쌓인 태백산을 등산할 때는 꼭 문수봉으로 갑니다.

 비교적 한적한 코스인데다 천제단까지 고산준령의 능선(3km)을 타는 나만의 재미를 즐기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문수봉 코스는 당골광장 들머리에서 문수봉을 거쳐 천제단까지 거리가 7.3km에 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태백산은 또 당골에서 시작해 당골로 되돌아오는 경우에는 원점 회귀를 할 수 있지만, 유일사 매표소에서 시작해 당골로 하산하거나, 반대의 경우에는 하산 뒤 차량이 있는 원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합니다.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아 그리 많은 비용이 나오지는 않을 것 입니다.

 유일사매표소-장군봉-천제단-문수봉-당골로 태백산을 완전히 일주하는 경우에도 하산 뒤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비록 원점 회귀에 불편이 있지만, 시간이 넉넉하다면 겨울 태백산을 종주하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 입니다.

 태백산은 1500m 이상 높은 산 이지만, 오르기가 아주 힘든 산은 아닙니다.

 산행 들머리인 당골광장이나 유일사 매표소가 이미 해발 표고 800여m 지점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실제로 오르는 높이는 700-800m 쯤으로 보면 됩니다.

 또 문수봉-천제단 능선을 종주하지 않는다면 어느 코스로 가든 이동거리가 왕복 9km에 못 미치기 때문에 높은 산 치고는 산행 거리도 상대적으로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백산은 연말연시에 특히 많은 산객들이 몰립니다.

 워낙에 영험한 산이기 때문에 그 정기를 받아 새해에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한해를 더욱 활기차게 보내려는 소망의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태백산은 단군조선, 삼한,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천제를 올리던 성스런 곳 이기도 합니다. 신라시대에는 삼산오악(三山五岳) 중 북악(北岳)으로 부르며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천제단에서 당골 쪽으로 500m 정도 내려오면 망경사 절이 있습니다. 절에 도착하기 직전 등산로 옆에는 영월에서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조선의 어린 임금 단종을 기리는 단종비각이 있습니다. 절에는 용정 이라는 샘물도 있습니다)

 

  

  

 

 (당골 계곡이 나타나면 당골광장이 1.7km 정도 남은 것 입니다. 이제부터는 거의 평지 수준입니다. 눈을 소담스럽게 이고 있는 게곡의 겨울 풍경화가 심산의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나를 확인케 합니다)

 

 때는 어느덧 계사년을 보내고, 갑오년을 여는 연말연시 입니다.

 태백산에 이미 많은 눈이 쌓여 있으니 설경을 즐기고, 새해 소망을 이루기 위한 기원의 발길이 또 무수히 태백산을 수놓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 기원의 발길은 태백산에서 큰 힘과 의지를 더하게 될 것 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