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梅寒苦不賣香

좋은산 2013. 8. 16. 09:07

   '梅寒苦不賣香(매한고불매향)'
 우리 편집국에 들어서면 벽면 중앙에 이 여섯 글자를 쓴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매화는 추위 속에 고생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 입니다.
 이 말은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이라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짝을 이루는 말로는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이 있습니다.
 해석하면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결코 향기를 파는 법이 없고,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간직한다"는 뜻 입니다.
 눈 밭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태와 옛부터 악기를 만드는데 애용돼 온 오동나무의 쓰임새를 선비의 절개와 기개에 빗대 절묘하게 읊은 경구이니 신문사 편집국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도 없을 듯 합니다.
 이 말은 조선중기의 문신인 신흠 선생(1566∼1628년)이 남긴 말 입니다. 21세에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뒤 관직에 나가 조선조 최고위 관직인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로, 조선시대 4대 문장가의 한사람으로 꼽힙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임진왜란과 계축옥사, 인조반정, 정묘호란, 정여립의 난, 이괄의 난 등 혼란이 끊이지 않았던 '난세'였습니다.
 그 또한 삭탈관직과 유배 등 어려움을 적지않게 경험했습니다.
 그런 시대를 헤친 선비였기에 한눈팔지 않는 매화와 오동나무의 절개가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그는 광해군 시대에 계축옥사에 연루돼 이곳 춘천에서 유배생활을 하기도 한 인물이었습니다. 계축옥사는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즉위하자 실권을 장악하게 된 대북파가 선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이유로 소북파를 일거에 몰아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신흠은 선조가 영창대군의 보필을 당부한 일곱 신하 가운데 한명으로 지목됐고, 결국 춘천으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결코 향기를 팔아 안락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시대를 달리해도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하는 우리 언론사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말 입니다.

 다만 그 실천이 어려울 뿐인데, 노력이라도 한다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