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지부(陶朱之富)에 대하여
시절이 하 수상해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가 범려라는 인물을 떠올려 봤습니다.
역사상 뛰어난 인물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범려 처럼 매력적인 인물도 드물 것 입니다.
범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산 인물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월왕(越王) 구천(勾踐) 세가(世家)'편과 사기(史記) '화식전(貨殖傳)'에 범려의 얘기가 등장합니다.
월왕 구천 세가편에 등장하니까 월나라 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나라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고사성어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오나라와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앙숙 관계였습니다.
월왕 구천은 특히 오왕 부차(夫差)와 불구대천 원수지간 이었는데, 여기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가 또한 탄생합니다.
중국 춘추시대 말기인 기원전 5세기 월왕 구천과 전쟁을 벌이던 오나라 왕 합려가 패하여 죽으면서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부탁합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부차는 매일 장작나무 위에 누워(臥薪) 불편하기 이를데없는 잠을 자면서 "기필코 부왕(父王)의 원수를 갚으리라"고 전의를 다집니다. 그리고 2년 뒤 구천과 싸워 월나라의 수도 근처 회계산(會稽山)이라는 곳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전쟁에서 패한 구천은 부차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한뒤 합려의 묘 옆에서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면서 말을 키우는 수모를 감내합니다.
나중에 병이 든 부차를 극진히 간병하는 등 충복 같은 노력을 한 끝에 오나라에서 풀려나 다시 월나라로 돌아오게 된 구천은 자신의 방 입구에 쓸개를 걸어놓고, 나 다닐때 마다 그 쓸개를 핥으면서(嘗膽) 회계산의 치욕을 복수하겠다고 벼릅니다.
이를 갈면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민생을 살피는 각고의 노력을 한 20년 뒤 구천은 숙적 오나라를 공격해 결국 멸망시키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와신상담 고사의 내용입니다.
물론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복수를 하고,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을 함께하며 지략을 보탠 범려의 공이 으뜸이었습니다. 이에 월왕 구천은 범려의 공을 높이 사 그를 상장군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범려는 최고의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모든 것을 버린채 갑자기 월나라를 떠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때 범려가 남긴 말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창고에 들어가고,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를 삶아 죽이는 법'이라는 말 입니다. 정치권에서 자주 인용을 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조진궁장(鳥盡弓藏), 토사구팽(兎死狗烹)'은 바로 범려의 말 입니다. 물론 나중에 '배수진의 명장' 한나라 한신이 '토사구팽'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원조는 역시 범려입니다.
범려는 토사구팽을 말하면서 월왕 구천을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범려의 예측대로 숙적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복수를 한 월왕 구천은 나중에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문종(범려와 쌍벽을 이루던 공신)이라는 신하를 비롯 공신들을 죽음으로 몰게 됩니다.
역사에서는 이처럼 천하를 통일한 뒤 공신들을 처단하는 예가 무수히 많은데,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한신의 경우도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천하를 여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무장이었지만,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제나라에 정착해서는 상인으로 변신,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제나라에서는 범려의 재주를 높이 사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하나 범려는 "오래도록 영화를 누리는 것은 좋지 않다"며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다시 제나라를 떠납니다.
이번에 범려가 찾아간 곳은 송나라의 도(陶)라는 곳. 그곳에서 또 장사를 한 범려는 뛰어난 상업 능력을 발휘, 다시 엄청난 거부가 됩니다.
사마천이 사기 화식전(貨殖傳)에 범려를 등장시킨 것도 범려의 이같은 상업능력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도(陶) 지방에서 엄청난 부를 쌓은 범려를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부르고, 범려가 쌓은 부와 나눔의 정신을 도주지부(陶朱之富)라고 칭송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도주지부는 큰 부자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범려와 관련된 고사 한가지를 덧붙이면
범려가 도 땅에서 큰 엄청난 부자가 됐을때 둘째아들이 초나라에 갔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죄로 옥에 갇혀 처벌을 기다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범려는 둘째 아들의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만금의 돈을 주어 자신의 막내아들을 초나라에 보내려 했으나 장남이 "동생을 구하는 일은 마땅히 장자가 해야할 일"이라며 자신을 보내주지 않으면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고 보내줄 것을 간청합니다.
이에 범려가 하는 수 없이 장남에게 만금을 들려 초나라에 보내 자신이 잘 알고있는 초나라 세력가를 찾아가도록 합니다. 초나라에 당도해 세력가를 만나면 구명을 요청하되 무조건 그의 말만 듣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초나라에서 세력가를 찾아간 장남은 아버지가 들려준 만금을 그 세력가에 주고 동생의 구명을 부탁합니다.
초나라 왕의 스승으로 통할 만큼 존경을 받고있던 그 세력가는 범려의 장남에게 "이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동생의 방면을 기다리되 동생이 방면돼 돌아오더라도 연유를 절대 묻지 말라"고 하면서 속히 돌아갈 것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그 세력가는 왕에게 "요즘 별자리를 돌아 보니 불순한 기운이 가득해 나라에 변고가 생길까 우려된다"며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려 옥에 갇힌 죄수들을 풀어주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간언합니다.
이에 왕이 그 청을 받아들여 곧 대사면령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찾아가 "대사면령이 내려진다는 소문이 돌자 백성들 사이에서 도땅의 부자(범려) 아들을 살리기 위한 사면령이라는 해괴한 소문이 돌고 있어 자칫 정치에 대한 불신이 우려된다"고 말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이 크게 노해서 소문의 진원이 된 범려의 둘째 아들을 먼저 처형시킨뒤 사면령을 내리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결국 범려의 장남은 동생의 시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는데요.
슬피 우는 가족들에게 범려는 목숨까지 걸고 호소하는 장남의 간청 때문에 장남을 보내기는 했으나 이미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역사에서는 범려 처럼 나아가고 물러남이 확실한 인물도 없다고 평가합니다. 범려에 얽힌 모든 고사성어가 2500여년이 지난 현재도 사람들의 입에 교훈으로 회자되고 있으니 그의 인물 됨됨이와 인생 철학이 오늘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