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나를 비교치말라
<요즘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라는 신간 서적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은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무게도 그렇거니와 남겨진 일화 하나하나까지도 범상치가 않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해군과 해장(海將)이 장군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으로 장군의 무게를 확인해 볼까 합니다.>
사람들은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할 때 자주 이순신 장군을 떠 올립니다.
예전에 모 정치인도 '尙有十二 舜臣不死(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왜, 이순신 장군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영원한 모델이 되는 것 일까요.
우리는 어릴 때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배웠습니다.
영웅 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죠.
과연 이순신 장군이 그만한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일까요.
몇해전 방영된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임진왜란(일본에서는 '文祿의 役'이라고 함) 당시 '23전 23승' 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남긴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지만, 정말 장쾌하게 다뤘습니다.
그러나 성웅, 불패의 신화 같은 평가는 모두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기에 조금 계면쩍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근세 일본의 한 해군 장군을 떠 올려 봅니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848∼1934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팽창하게된 제국주의 일본이 결국 우리나라를 강제 침탈한 통한의 역사롤 돌이켜본다면 그의 승리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매우 비통한 일이 되지만, 지나간 역사의 궤적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8일 일본이 선전포고도 하지않고 뤼순항(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대련 지역에 있는 항구,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뤼순) 감옥이 있는 곳)에 정박해있던 러시아 극동함대를 공격하면서 시작됩니다.
극동함대가 큰 타격을 받자 러시아는 고심끝에 발틱함대를 출동시킵니다.
1904년 10월 발트해를 떠난 발틱함대는 대서양 최남단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끝에 7개월이 지난 1905년 5월27일에야 대한해협에 도착합니다.
세계는 일본의 승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북극의 곰,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남진정책이 크게 위축되고, 일본은 제국주의 팽창에 날개를 달게 됩니다.
그런데 승장 도고 헤이하치로가 러일전쟁 승전 축하연이 열렸을때 "나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는 비교될 수 없는 사람이다"라며 이순신 장군을 '군신(軍神)'의 반열에 올렸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한 일본 기자가 "장군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조선의 이순신에 비견될 만하다"며 도고의 생각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도고는 "넬슨에게 나를 비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조선의 이순신에게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군신(軍神)'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오직 이순신 장군 뿐"이라는 말과 함께 "이순신이 지금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는 일화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합니다.
1805년 트라팔카 해전에서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합함대를 궤멸시켜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을 분쇄한 넬슨과 도고 자신은 국가와 국민의 성원속에 전쟁을 이끌었지만, 이순신은 국가적 지원이 거의 없는 말 그대로 백척간두의 외롭고, 험난한 상황 속에서 전승을 일궈냈기에 비교가 안된다는 것 입니다.
다시 이야기를 러일전쟁으로 돌리면, 발틱함대의 완패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당시 발틱함대는 일본까지 항해하는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고 했습니다.
무려 7개월이란 기간을 2만9000㎞를 돌아 바다에서 격랑과 싸운뒤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대한해협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일본 해군과의 전쟁에 들어가게 되는 것 입니다,
또 당시 발틱함대가 보유하고 있던 함선이 대부분 구식이어서 매우 노후했던데 반해 신흥 개화국인 일본은 최신예 신식 함선으로 무장, 규모에서는 열세였다고 해도 속도와 함포 등 장비에서는 훨씬 앞서있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식 함선을 끌고 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지칠대로 지친 발틱함대를 최신예 일본 해군이 격파한 것 이라고 해도 전투에서 의식불명의 부상을 입은 발틱함대 사령관 로제스 트벤스키가 나중에 도고 헤이하치로를 만난 자리에서 "당신에게 패한 것이기에 나는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 대목을 떠 올리면 역시 일본 해군의 승전을 과소평가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 메이지시대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의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을 거쳐 해군 제독으로 일본의 역사를 바꾼 도고 헤이하치로는 그후 일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평생 군인의 외길만 걷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도고가 러일전쟁 승전 축하연에서 자신을 이순신 장군에게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고 한 대목은 상당히 윤색됐다는 얘기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을 교과서 처럼 연구하고 끊임없이 신봉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주기적으로 참배를 드렸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결국 400여년전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에게 호되게 당한 일본이 자신들이 이겨보지 못한 '적장'을 큰 스승으로 섬겨 최강의 해군력을 일궈낸 것 입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 영국 등 전세계 유명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등 해상 전법을 모든 생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