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대마도 택시기사
좋은산
2013. 8. 16. 00:11
지난 2007년 여름 대마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잘 하는 친구가 통역 겸 가이드 역할을 했기에 저는 그냥 안내하는 곳으로 열심히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존재였죠.
후쿠오카에서 대마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는데, 오 마이 갓, 정원이 한 50명 정도밖에 안되는 정말 작은 소형 비행기 였습니다.
흔들리는 비행기를 타고 설레임 반, 걱정(?) 반 30여분을 날아갔더니 구름 아래로 대마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드디어 안전하게 착륙.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미끄러지던 비행기가 드디어 멈춰섰습니다.
여기가 조선통신사의 중간 기착지 대마도.
대마도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레 걸쳐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쳐가는 통로였습니다. 또 남해안 삼포의 왜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이라는 나라가 존재했기에 거기에 기대어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섬 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마도에 내려서며 세상에 그렇게 작은 공항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천이나 김포, 양양공항 등지만 봐 왔으니 그런 작은 공항은 사실 볼 기회가 없었던 것 입니다.
거의 간이역 수준의 공항. 소형 항공기에서 내린 승객(승객이라고 해야 고작 10명 남짓)들은 활주로 광장을 막 뛰어서 공항 출구로 들어서야 했습니다.
구멍가게 같은 공항을 빠져 나오자 정말 시골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공항 앞에 기다리고 있던 택시가 고작 2-3대 뿐이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는데 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 먼저 들러달라고 했더니 60대 쯤으로 돼 보이는 기사 아저씨가 '하이, 하이'하면서 잘 접수했다는 투로 출발을 했습니다.
얼마쯤 갔을까. 은근히 택시비 걱정(일본은 교통비가 비싸기로 유명함)을 하고있는데, 아저씨가 우리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것 이었습니다.
"뭐라고 하냐"고 함께 간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기사 아저씨가 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 들른뒤 어디로 갈 거냐고 해서 이즈하라 항이라고 했더니 우리가 역사민속자료관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자기가 밖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태우고 이즈하라로 가면 안되냐고 묻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2시간 정도 걸릴수도 있는데, 그럼 기다리는 값도 꽤 나올텐데"라고 반문했더니 대번에 "안 받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친절이 지나친게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그럼 좋을대로 하라"고 한뒤 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 도착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우리를 내려준뒤 정말 기다릴 심산으로 공터 나무 그늘 아래에 주차를 하더군요.
두어시간쯤 지나 우리가 대마역사민속자료관장 인터뷰 등 취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어랍쇼, 이 기사 아저씨가 정말로 가지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안 갔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기다려준 아저씨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또 물음표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이즈하라 항으로 가면서 아저씨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그 시간에 영업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텐데, 왜 두시간이나 낭비해 가면서 기다렸냐"고.
그랬더니 "나가봐야 영업도 안될게 뻔 하므로, 오히려 우리를 태우고 다시 이동하는 것이 더 낫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아저씨 덕분에 편안하게 이즈하라에 도착해 더 많은 취재를 할 수 있었는데, 취재를 하는 동안 대마도 택시기사도 참 고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대마도 이즈하라항- 부산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대마도 경제에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인구는 자꾸 줄어 이제 4만명 고작이고, 일본 관광객들은 아예 가뭄에 콩나는 정도인 것이 대마도의 현실 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마도 택시 기사는 길에서 손님을 태우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전화로 부르면 달려가는 방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콜 택시 영업만 하고 있는 셈인데, 섬에 인구가 많지않고 젊은이들은 자꾸 대처로 빠져나가니 영업이 잘 될리가 없는 것 입니다.
그나마 부산에서 들어노는 한국 관광객들이 대마도 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는데, 관광버스로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택시 기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안되는 모양이었습니다.
하여튼 어느나라나 변방은 힘겨운 공통분모를 안고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차라리 대마도가 우리땅 이었다면 그 지리적 위치상 이렇게까지 외진 곳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을 일본인들에게 얘기하겠다고 했더니 그곳에서 만난 한국 파견 공무원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하지 않았습니다.)
*대마도에서 여담 한가지 더
대마도 역사민속자료관의 관장님과 조선통신사나 표류민 등 조선시대 교류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뒤 불쑥 왜구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이건 좀 실례가 될 수도 있는데, 라고 단서를 붙인 뒤 "대마도가 사실 고려말부터 왜구(일본에서는 와코우라고 발음하더군요)들 본거지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관장님이 다소 당황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왜구가 꼭 일본인들 만으로 구성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며 간단하게 대답을 하더군요.
왜구에 대해서도 우리와 일본은 적지않은 시각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칠순을 훨씬 넘긴 관장님을 붙들고 더 왈가왈부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