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왼발귀신 이야기

좋은산 2013. 8. 29. 18:34

누구나 소싯적 추억 한두가지 쯤은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죠.

그때 그 시절에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창피해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못하고, 남몰래 꼭꼭 숨겨뒀지만, 세월이 흐르면 술자리 안주처럼 더 진하게 우러나는 그런 추억 말입니다.

오늘 몇몇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런 추억담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 중에서 압권으로 꼽을만한 한 지인의 추억담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얘기를 들려 준 지인은 나이가 50대 중반.

우리들과 큰 차이가 없는 연배이기에 “그땐 그랬었지”하고 더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얘기의 제목은 ‘왼발 귀신’ 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얘기의 주인공은 ‘가’군이라고 하겠습니다.

 

‘가’군은 강릉의 산골마을, 거의 화전민이나 다름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그 시절 가난한 집 아이들이 거의 그러했듯이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그칠 새 없었고, 신발이나 옷가지도 변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산이나 계곡, 들판을 쏘다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산골 개구쟁이, 상상이 되죠.

그런 ‘가’군에게 어느 날 정말 뜻밖의 큰 선물이 생겼습니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새 검정고무신을 사온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검정고무신은 왼짝만 두 개였습니다.

어머니께서 파장 무렵에 떨이를 하는 고무신 좌판에 들러 남아있는 고무신을 골랐는데, 아무리 골라도 ‘가’군 발에 대충이라도 맞는 것은 왼짝용 두 개 뿐이어서 그것을 헐값에 사온 것입니다.

왼발용 뿐이지만, ‘가’군은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검정고무신 새신을 갖게 됐으니 어린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입니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학교에 신고 가야지”

새 검정고무신을 막 신어 더럽히거나 떨어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개구쟁이는 초가집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두고 개학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날.

공교롭게도 그날은 밤새 내린 흰 눈이 소복이 쌓여 한 장의 도화지를 펼쳐놓은 듯 온 세상이 깨끗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왼발에도 왼짝, 오른발에도 왼짝 고무신을 억지로 신고,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선 개구쟁이 ‘가’군은 힘차게 또박또박 눈 위를 걸어갔습니다.

‘가’군이 집을 나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산골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 ‘나’군이 ‘가’군과 함께 학교에 가기 위해 집에 들었다가 “벌써 학교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 뒤를 따르게 됩니다.

사실 ‘나’군은 지능이 조금 떨어져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기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눈길로 나선 ‘나’군이 자꾸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하얀 눈 밭 위에 앞서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데, 자기 발자국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왼발’-‘왼발’-‘왼발’ 하는 식으로 오른발은 없고, 계속 왼발만 눈 위에 찍혀있는 이상한 발자국.

그것이 앞서 학교로 간 친구 ‘가’군의 발자국 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접어둔 채 ‘나’군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친구들에게 소리칩니다.

“얘들아, 나 오늘 왼발귀신을 봤다. 학교에 오는데 눈 위에 계속 왼발자국만 찍혀 있으니 틀림없이 왼발 귀신이 다녀간 거다”

‘나’군의 외침에 더 놀란 것은 먼저 교실에 들어와 있던 ‘가’군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새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왔는데, 그것이 왼짝 뿐 이라는 사실이, 왼발귀신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모든 친구들에게 알려지면 정말 창피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날 하루 ‘가’군은 발을 책상 밑에 밀어 넣고 거의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지인이 들려준 왼발귀신 얘기가 이렇게 끝을 맺자 술자리에서 박장대소가 터졌습니다.

그 웃음은 추억을 공유하는 50대들의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또 하루를 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