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구라 이야기 1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나라가 있다면 그건 일본입니다.
괘씸하고, 또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과거 때문에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어 다닙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식민통치의 아픔 때문에 과거에는 중,고교 역사 시간에도 일본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중국사는 세계사 시간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일본사는 단락단락 교과서 한두페이지 정도를 점유하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얼마전 은사님을 만난 자리에서 "선생님 제가 졸업하고 난뒤 가장 모르는 나라가 일본이었습니다. 이웃나라여서 많이 배웠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실상 아는게 별로 없었습니다."라고 얘기를 했더니 "그 역사를 비중있게 가르치지 않아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구에서부터 임진왜란, 일제 식민통치 등 침탈의 역사가 반복되고, 그런 역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포장하는 저들의 왜곡까지 일상화 되면서 일본인과 일본은 '왜놈', '쪽바리' 라는 식의 경멸의 대상이면서 '별로 알 필요도 없는 섬나라' 정도로 여겨져 온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우습게 보는 세계 유일의 민족" 이라는 외국의 평가도 연원을 살펴보면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뒤늦게나마 좀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충신장(忠臣藏)이라는 일본 소설을 접하게 됐습니다.
충신장, 일본 발음으로는 '추신구라' 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의 원(怨) 이라던가, 집단의식, 주군에 대한 의리, 충(忠) 등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평가가 일반적 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 공연 소재로 가장 많이 활용돼 왔고, 매년 연말이면 영화나 TV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 구성돼 국민적 사랑을 받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춘향전'이 있다면, 일본에 '추신구라가 있다'"는 말로 많이 비견되기도 하고, 춘향전과 추신구라 비교 연구 논문도 적지않게 발표돼 있는 상태입니다.
추신구라는 일본 '에도(江戶) 바쿠후(幕府) 시대', 1701년에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토대로 탄생한 소설입니다. 내용은 무사들의 복수극 입니다. 따라서 이 소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일본의 시대 상황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일본은 '전국(戰國) 3웅' 이라고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거치면서 활극이 지배하던 전국시대를 종결짓고, 최후의 증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임진왜한 직후인 1603년부터 에도 바쿠후 시대를 열게 됩니다.
에도 바쿠후는 가마쿠라와 무로마치에 이어 일본에 등장한 3번째 막부(무사정권)입니다.
'천왕' 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 통치권은 바쿠후의 장군(쇼군)이 행사합니다. 전국은 다시 수백개의 한(藩)으로 나뉘어지고, 각 한마다 다이묘(大名)라고 부르는 영주가 있어 그 지방에 대한 지배력을 갖습니다.
다이묘들은 우리가 흔히 '사무라이(侍)' 라고 부르는 가신 그룹을 보유하고, 자신의 영지에 대해 실질적인 자치권을 행사합니다.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산물을 쌀로 환산한 고쿠다카(石高)에 의해 5만석 영주, 10만석 영주, 20만석 영주 하는 식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농경 생산량이 많으면 생활이 풍족하고, 더 많은 무리(사무라이)를 거느릴 수 있는 것이 당연지사 이므로 고쿠다카가 많은 영주가 역학관계상 우위에 서는 것도 필연이겠죠.
이런 지배 구조로 인해 지방의 다이묘 가운데는 강력한 힘과 부(富)를 소유한 다이묘가 출현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지는 다이묘도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강력한 힘과 부를 소유한 한이 중앙의 바쿠후에 도전하는 상황이 빚어진다면 중앙 바쿠후의 쇼군으로서는 정말 골치아픈 일이 되겠지요.
그래서 바쿠후의 한을 통치하는 지방의 다이묘들이 힘을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 '참근교대(參勤交代, 산킨코타이)' 라는 절묘한 제도를 만들어 냅니다.
지방 영주인 다이묘의 처, 자식들은 에도에 거주토록 해 실질적으로 인질로 삼은 뒤 지방 다이묘들은 1년은 에도에서, 1년은 자신의 영주에서 거주토록 한 것 입니다.
1년에 한번씩 에도와 자신들의 영지를 오가는 다이묘들은 세 과시를 위해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명까지 수행원들을 데리고 이동을 합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이동수단이라고 해 봐야 우마차가 전부이던 시절, 지방 다이묘들은 보통 한두달은 길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해야 했는데요.
이렇게 수많은 영주들이 이동을 하면서 쓰는 돈이 어마어마해 영주들의 이동로를 중심으로 유통 경제가 크게 발달하게 됩니다. 반면에 영주들은 1년에 한번씩 에도와 영지를 오가면서 막대한 돈을 길에 허비해야 하니 부와 힘을 키울 겨를이 없어지는 것 입니다.
추신구라는 이 참근교대 기간에 에도에 와 있던 지방의 한 영주가 바쿠후의 쇼군을 모시는 세력가에게 미움을 사 모멸감을 맛 본 뒤 칼을 휘두르고, 결국 쇼군의 영내에서 칼을 휘둘렀다는 죄로 할복 자결하게 되는 상황 설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