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석가탑을 깨고, 숭례문을 불 태우고

좋은산 2013. 8. 22. 21:49

 (지난 2008년 서울 도성의 정문 숭례문이 불타는 충격을 보고 쓴 글)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국민적 충격이 참으로 큽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 저도 TV 화면으로 숭례문이 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전쟁도 아닌 평화시에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며 마음속으로 개탄했습니다.

 엊그제는 불탄 숭례문에 국화꽃을 바치는 국민들의 모습이 신문과 TV에 클로즈업 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이제 저렇게 상심한 국민들의 마음이 정성으로 모아져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의식이 몇단계 더 성숙해 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 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문화재가 수난을 당한 일은 너무나 많아 아마도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일 겁니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은 차치하고라도 도굴범들에 의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밀거래 반출돼 아마도 이 땅의 부도탑이나 고분 등을 한번 살펴본다면 속이 텅 비어 있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고학계에서는 현존하는 무덤이나 고분 가운데 도굴범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2∼3%도 채 안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굴범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1970년대 천마총, 황남대총 등 경주 일대 고분 등의 발굴이 한창일때는 당시 국내 최고의 도굴범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도굴범이 경주사적관리소의 임시 직원으로 채용돼 중요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무덤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심부를 정확히 파 들어가는 도굴범의 '실력'이 문화재 발굴에 활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전시 약탈이나 도굴 등을 제외하고도 문화재 보수나 복원 현장에서 상식 이하의 조치로 정말 어처구니 없이 소중한 문화재가 훼손된 사례도 있는데요.

 1966년 불국사 석가탑 복원공사중 훼손 사례는 지금도 땅을 치게하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석가탑은 그해 9월 도굴범들이 유물들을 훔치기 위해 압축잭을 이용해 탑신을 들어올리려다가 일부에 균열이 가고, 탑신이 기울면서 몇몇 부위가 파손되는 일이 발생, 문화계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습니다.

 그 뒤 범인들을 일망타진하고, 10월에 원상 복원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는데요.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천하의 보물인 석가탑 2층 옥개석을 들어올리다 옥개석이 땅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사고가 난 것 입니다.

 그런데 옥개석이 떨어진 이유가 참으로 황당합니다.

 석가탑은 아시다시피 무거운 돌로 만든 것이니까 옥개석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기중기 같은 것이 필요한데, 당시 기중기 지렛대로 사용된 것이 나무 전봇대(당시에는 전봇대가 대부분 나무)였던 것 입니다. 속이 썩은 전봇대가 옥개석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 부러지면서 공중에 들어올렸던 옥개석이 땅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 진 것이죠.

 정교하게 보수 복원을 해 놓았지만, 2층은 옥개석은 지금도 당시 깨졌던 흔적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고 있고, 당시 2층 옥개석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먼저 해체해 놓았던 3층 탑신 일부도 훼손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은 당시 연이어 일어나는데요.

 석가탑 탑신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치가 나오고 그속에서 아름다운 빛깔의 '녹색 사리병'이 아주 온전한 상태로 발견됩니다.

 국보 이상가는 대발견이었죠.

 석가탑 옥개석 훼손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 발견이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신라시대 예술의 극치라고 찬탄을 받을 만한 사리병을 불국사 극락전에 보관하던중 한 스님이 옮기다가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천년 넘게 석가탑 안에서 온전히 보관돼온 사리병이 산산조작, 완전히 박살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뒤에 파편들을 모두 수습해서 다시 붙여놓기는 했지만, 박살난 사리병은 옛날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석가탑과 사리병 파손의 아픔은 그래도 문화재를 복원해 잘 지키려다 실수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번 숭례문 화재는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방화에 의해 벌어진 일이니 정말 후손으로서 할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아왔던 랜드마크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으니 더욱 아픔이 큰 것 아니겠습니까. 숭례문은 흥인지문(동대문)과 함께 조선시대 가장 즐겨 애용되던 문이기도 합니다.

 모쪼록 최대한 타다남은 부재들을 잘 살려 600년전 선조들이 그곳에 불어넣은 혼을 일부라도 다시 세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