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천년 사찰의 멋에 빠지다
마니산 산행을 마친 뒤 강화 전등사를 찾았습니다.
한반도의 가장 동쪽 땅에서 천리길을 달려 이곳 서쪽 끝단까지 왔는데, 유서 깊은 전등사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겠죠.
381년에 창건된 절 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16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야말로 천년 사찰이죠.
처음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고려 충렬왕의 비인인 정화궁주(貞和宮主) 가 송나라의 대장경을 간행해 이 절에 보관케하고, 옥등(玉燈)을 시주하면서 그때부터 전등사(傳燈寺)라고 했다고 하는데, 절 이름의 유래가 된 옥등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선 중,후기에는 실록을 이곳에 보관하면서 사고(史庫)를 지키는 사찰로 왕실의 비호를 받게됐다고 합니다.
대웅전(보물 제178호) 네 귀퉁이 기둥 위에는 나녀상(裸女像)이 추녀를 받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얽혀 있다고 합니다.
조선 광해군 때 대웅전 중수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랫마을에 사는 주모에게 연정을 느껴 돈을 많이 맡겼는데, 공사가 끝나갈 무렵 주모가 돈을 모두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답니다. 여기에 화가 난 도편수가 그 주모를 본뜬 나녀상을 만들어 추녀를 들고 있게 했다는 재미있는 설화입니다.
대웅전의 불경 소리를 듣고 나녀(주모)는 지금쯤 본인의 행동을 개과천선 했을까요.,
이런 재미난 얘기는 전등사 안의 해설사에게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전등사를 오르는 숲길에서는 정족산성으로 불리는 '삼랑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종해루(宗海樓)라는 현판 편액이 걸린 이곳은 삼랑성의 남문인데, 전등사의 정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1739년, 조선 영조 15년에 강화유수 권교가 수축하면서 종해루 라는 현판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무설전(無說殿) 입니다. 말을 하지 않는 곳 이라고 하면 되나요. 말이 없어도 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처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넓은 법당 안에 들어서니 너나없이 말 없이 조용한 가운데 마음이 고요해 집니다.
여러사람들이 모여 해설사로부터 전등사의 역사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나녀상이 대웅전 처마를 받치게된 설화도 재미나게 들려주네요.
정족산성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한번 쯤 걷고 싶은 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