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천안함 해군 수병들을 애도하며

좋은산 2013. 8. 21. 15:46

 (2년 전 천안함 침몰 당시 쓴 글 입니다. 해군과 군함은 제 추억이 서려있는 곳 입니다)

 

 TV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흐르네요.
 옆에 있던 중학생 아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아빠 울어”라고 물으면서 자기도 숙연해 합니다.
 한명, 또 한명 시신 수습 속보가 계속 자막으로 뜨고, 그들의 애틋한 사연들이 소개될 때마다 가슴이 울컥울컥하면서 눈물이 고입니다.
 아들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됩니다.
 저 또한 32개월간 해군에 몸을 담고, 함상 생활을 한 수병이기 때문에 넋이 되어 돌아온 그들의 주검이 더욱 안타깝고,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772함, 천안함이 백령도 부근 바다에서 침몰하고 46명의 수병이 실종됐다는 20여일전의 비보를 접하고, 저는 매일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기자라는 직업적 속성도 있겠지만, 저 또한 그들과 비슷한 배를 탔던 해군 출신이기에 그들의 안타까움, 슬픔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 때문입니다.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주변 서해 바다는 사실 제가 25년 전 그들과 비슷한 배를 타고, 근무를 했던 바다입니다.
 물론 저는 PCC초계함인 천안함보다 큰 DD구축함을 탔기에 백령도 아주 가까이까지 갈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주변 바다는 지금도 선연합니다.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두동강이 나 그 차가운 바다 속에 침몰한 배에 갇혀 꽃다운 생을 마감해야 했을 후배 장병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을지 그냥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에 굳은살이 박힌 것 처럼 무겁고, 애처롭습니다.
 다들 피가 끓는 청춘들인데, 남겨진 유족들의 슬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억장이 무너지고, 소낙비처럼 눈물을 쏟는다고 해도 가슴속 피멍은 아마도 영영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해군은 배가 집과 같은 존재입니다.
 초계 임무를 받고, 한번 바다로 출동을 나가면 한달씩 바다에 떠서 생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제가 해군 생활을 할 때는 2개월이 넘게 망망대해 수평선만 바라보고, 육지를 밟아보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 함선 속에서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장병들이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기 때문에 해군의 동료애는 더욱 진합니다. 물론 사람이기에 다툴 때도 있고, 군대이기에 선임병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얼차려를 받을 때도 있지만, 다들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미움이나 갈등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의무실에서 근무를 했기에 열이 40도씩 오르는 동료를 위해 밤을 새면서 알코올로 몸을 닦고, 간호를 하는 일이 적지 않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가족 같은 정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배에서는 몸이 아파도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같은 배를 탄 동료들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장병들의 고통도 그래서 더욱 크고, 아플 것입니다.
 아침에 신문을 보니 그들 46명의 얼굴이 파도치는 비극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네요.
 그 맑고 깨끗한 젊은 얼굴, 요동치는 가슴 속에 얼마나 많은 애환과 추억, 못 다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을지, 다시 잠시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들이 너무 젊고, 그 죽음이 한없이 애처롭기에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는 말도 제대로 건넬 수가 없네요.
 링스 헬기 추락사고까지 해군에 비극적인 일이 잇따르다 보니 자칫 지원병으로만 편성되는 해군 지원자가 줄어들까 해군 출신으로서 걱정도 됩니다.
 물론 바다는 위험합니다. 인간이 어차피 육상 생활을 주로 하는 동물이기에 바다는 제약이 많고, 또 견디기 힘든 어려움도 많습니다.
 열기 때문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소금을 먹으면서 근무를 해야 하는 기관실, 3단-4단으로 침대가 연결된 비좁은 침실, 또 마냥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몽롱한 상태로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배 멀미, 칠흑 같은 밤바다의 무심한 적막과 포효, 한겨울 갑판이 온통 얼음으로 뒤 덮이는 맹추위, 물이 부족해 목욕 등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편 등등.
 오죽하면 해군은 풍랑이 거세지면 “황천 1급. 황천 2급”이라고 표현을 하겠습니까.
 그런 공간에서 저들 46명, 앞날이 구만리 같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40m가 넘는 바닷속에 갇혀 목숨을 잃고, 아직도 8명은 실종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청춘을 바친 바다는 인류의 영원한 도전의 공간입니다.
 바다를 넘지 못하면 민족이든, 국가든 생존은 없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쳐진 우리나라는 섬나라나 다름없기에 바다라는 공간이 더욱 소중하고, 생존을 위해 더욱 절대적입니다. 그곳에는 또 남들이 전혀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환경이 있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이 생산됩니다.
 천안함 침몰 이유를 감히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오늘은 아직도 실종 상태에 있는 8명을 포함해 저들 46명, 희생과 비극의 가치를 되새기고, 추모할 뿐입니다.
해군 도시 진해에 지금쯤 벚꽃이 흩날리겠지요.

천안함 수병들도 출동을 마치고 나면 함선 수리를 위해 진해에 입항할 계획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새하얀 벚꽃 색깔을 닮은 해군 제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휴가와 외박을 나가 그 벚꽃 아래에서 사랑과 젊음을 노래할 꿈에 부풀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들의 죽음과 실종을 애도하듯 지천으로 핀 벚꽃이 하얀 꽃비가 되어 흩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