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상원사 코스 일주 산행기(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
<오대산 산행>
*코스: 상원사-중대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1563m)-상왕봉(1491m)-상원사
*거리: 총 12.9km
*산행시간: 4시간 10분
*산행일시: 2015년 1월 3일
평화로운 청양의 해가 밝았다고 다들 들뜬 새해 초.
첫 산행을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오대산을 떠올렸습니다.
문수보살의 지혜가 깃들어 있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오대성지의 산.
높이는 최고 주봉인 비로봉이 1563m에 달해 우리나라 10대 고산의 반열에 들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
오대산은 마치 어머니 품 속에 드는 양, 양 처럼 포근한 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 산행 코스는 월정사와 상원사를 끼고 있는 오대산 주 탐방로에서 출발해 적멸보궁과 비로봉-상왕봉을 완전히 한바퀴 돌아 다시 상원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오대산 핵심 종주 코스 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더 없이 쾌청해 오대산의 민낯을 정말 제대로 보고 즐감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오대산은 역시 우리나라에서 첫 손에 꼽히는 불법(佛法)의 성지.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상원사의 여러 가르침과 유서깊은 문화 유산들이 줄지어 산객을 맞습니다.
세상살이의 가장 기본적인 법도인 '오대서약'과 '오대광명(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맑아지고, 생각이 밝아지고, 좋은 인연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피로 소원이 이루어진다) 가르침이 잇따라 적혀있는 진입로와 사천왕문을 지나 상원사 경내에 들어서면 별천지에 들어선 듯 갑자기 눈이 환해지고, 마음은 단정해 집니다.
사천왕문을 지나 상원사 경내에서 처음 만나는 곳은 미술관 '비움'과 '이매일(怡每日) 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는 방 입니다.
이매일(怡每日)은 '몸과 마음이 기뻐지는 곳' 이라고 하니 방문객의 마음이 밝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술관 '비움'은 예전에는 '화로방(話老房)-이야기가 익어가는 방' 이라는 심오한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한동안 발길이 뜸 했던 시이에 비움 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술관으로 바뀐 모양입니다.
뭐, 어떤 이름이라고 해도 그 메시지가 선계의 귀인을 만는 듯 세속의 잡념에 찌든 머리와 마음에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 섭니다.
사실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가 중심사찰로 자리잡고 있는 이곳 오대산은 불가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기거하는 산으로 유명하고, 상원사는 적멸보궁과 함께 그 핵심인 문수 성지로 통합니다.
주차장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입구 왼편 길 옆에 관대걸이 라는 석조 유물이 서 있습니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목욕을 할 때 벗어놓은 의관을 걸었다고 하는 유물로, 세조 임금과 상원사가 깊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스토리로는 세조와 상원사 문수보살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꿈에 어느날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세조에게는 형수)가 나타나 침을 뱉습니다. 그 뒤 세조는 몸 여기저기에 피부병이 번집니다(사실 역사에서도 세조는 말년에 종창 부스럼으로 매우 고생한 임금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각지의 온천을 찾아다니던 세조가 어느날 이곳 상원사에 들러 산간 계곡물에서 목욕을 하게 되는데, 그 때 문수보살을 만나게 됩니다. 주위를 물리치고, 목욕을 하던 세조가 등을 밀고 싶어 두리번거리던 중에 한 동자승을 발견하고 등을 밀어달라고 하는데 일을 마친 뒤 세조가 동자승에게 "어디가서 임금의 옥체를 씻어줬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자 동자승이 "대왕께서도 어디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말을 하지 마시오"라고 했다는 흥미로운 스토리 입니다.
그 스토리와 문수보살의 지혜를 되새기면서 상원사를 만나면, 만남이 더 깊어지겠죠.
그 상원사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천고(千古)의 지혜(智慧)- 깨어있는 마음' 이라는 글귀가 높이 걸려있네요.
국보 36호로 지정돼 있는 상원사 동종(銅鐘) 입니다. 보물 동종은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상원사를 벗어나면 곧바로 적멸보궁 가는 산길이 기다립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오대산 산행이 시작되는 것 입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까지는 대략 1.5km 정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이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비탈길로 이어집니다.
상원사-적멸보궁 중간 쯤, 산 비탈면 계곡에 계단형으로 절집이 지어진 중대사자암을 만나는 것도 오대산 등산의 큰 즐거움 입니다. 중대사자암에는 등산객과 불자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식수대 시설도 갖춰져 있습니다.
중대사자암.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가는 증간 쯤에 자리잡고 있는데, 산의 비탈진 경사면을 활용해 계단식으로 요사채를 배치한 것이 매우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오대산 최고의 성지-적멸보궁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보궁 답게 방문객의 몸가짐과 마음을 저절로 경건하게 하는 분위기부터 압권입니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으로 통합니다.
그래서 보궁 법당에 불상이 없고, 불단만 설치돼 있는 것이 특징적이고, 보궁 뒤편에 마애불탑이 서 있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오대산의 산세를 살펴보면 비로봉과 상왕봉 등에서 흘러 내린 주변의 산이 모두 적멸보궁을 감싸고, 알현하는 듯한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적멸보궁이 천하의 명당으로 꼽히는 이유를 오대산 등산을 하면 알게되는 것 입니다.
비로봉을 정점으로 다섯 봉우리가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기거하는 상원사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 북대(미륵암), 중대(사자암) 등 다섯대에 암자가 배치돼 있습니다.
산 이름이 오대산인 것도 그로부터 연유한 것 입니다.
중심 사찰인 월정사는 팔각구층탑(국보 제48호)을 비롯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고, 조선시대 실록을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또한 이곳 오대산에 자리잡고 있으니, 오대산은 우리 역사에서 크나큰 무게를 지닌 곳 이기도 합니다.
적멸보궁에서 오체투지 삼배로 마음을 다스린 뒤 다시 등산로로 접어들면 이제는 정말 된비알 비탈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멸보궁에서 오대산 정상 비로봉까지는 거리는 꼭 1.5km.
그 가운데 1.2km는 거의 계단만 밟고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고산 등산로 치고는 오르막이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닌데다 국립공원 답게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어 조금 오르면 800m, 500m, 300m 식으로 비로봉까지 거리가 계속 줄어드니, 그 거리를 세면서 올라가는 재미도 제법 쏠쏠합니다.
1월3일 낮 12시. 비로봉은 정말 티없이 맑은 날씨를 연출했습니다.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곳에 거칠 것 없는 파란색 세상이 펼쳐져 무엇인가 했더니 바로 동해 바다였습니다.
노인봉과 황병산, 곤신봉, 선자령 풍력발전단지, 계방산 등 사방으로 달음질치는 백두대간 능선을 한눈에 굽어보는 멋 또한 일품이었으니, 이것이 제가 산을 찾고, 정상에 오르고 싶어하는 끝없는 유혹입니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이동하는 길에 만난 주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하는 주목은 태백산, 가리왕산, 오대산 등 강원도 고산지대에 군락을 이뤄 서식하면서 보호되고 있습니다.
비로봉에서 2.3km를 이동하니 오대산 상왕봉(해발 1491m) 입니다.
너른 터로 이뤄진 상왕봉은 쉬어 가기 좋은 곳인데, 여름에는 뙤약볕, 겨울에는 칼바람이 몰아칠 수 있으니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을 먹을 때는 주변의 적당한 장소를 골라야 합니다.
상왕봉에서 두로봉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능선 중간중간 솦속에 여러사람이 어울려 요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몇군데 있으니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는 것은 그런 장소를 찾아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곳 상왕봉에서 두로봉 쪽 능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중간에 상원사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탔습니다.
내려가는 중간 중간, 제가 오늘 거쳐온 비로봉과 상왕봉 능선을 쳐다보며 제 산행 이정표를 다시 되새겨보는 것도 큰 재미였습니다. 가리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겨울산이기에 그렇게 지나온 길을 눈으로 다시 새기는 재미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등산은 역시 겨울산이고, 겨울산은 또한 강원도 고산 능선이 최고입니다.
오대산 본사인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동하는 길에는 천년 옛길로 통하는 '선재길'이 있습니다. 계곡과 숲길을 이리저리 돌며 길게 걷기 탐방로가 이어지는데, 길 옆의 아름드리 전나무 숲이 가히 천하의 자산 이라고 할 만합니다. 선재길 전체 길이는 월정사-상원사까지 9km에 달하는데, 선재길만 탐방하는 것도 도시인들에게는 탁월한 선택입니다.
저는 몇해전 묵언 수행자들이 이 선재길에서 삼보일보를 하면서 상원사로 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경건한 행보를 떠 올리면 지금도 고개가 숙여지고, 자세를 바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