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기념관-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생각하다

좋은산 2014. 11. 22. 21:57

 *방문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유적 기념관

*방문일: 2014년 10월17일 오전

 

 국제자매교류사인 중국 항주일보사를 방문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이튿날 아침 우리 일행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사실 항주시 호변촌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유적 기념관' 이었습니다.

 이곳은 1932년 상해 홍구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의거가 있은 이후 일제의 수색 및 요인 색출이 한층 심해지자 우리 임시정부가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거처를 옮겨 새롭게 둥지를 튼 곳 인데요.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4월에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한 임시정부는 이후 항주-진강-장사- 광주-유주-기강-중경으로 이동을 하면서 대한독립을 꿈을 키웠습니다. 임시정부가 옮겨다닌 7개 도시의 이동거리만 무려 1만3000리에 달한다고 하니 그 고단한 여정의 힘겨움을 다소라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곳 항주에서는 1932년 5월-1935년 11월까지 3년 6개월 남짓 머문 것으로 기록돼 있으니 그리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기념관은 사실 외관으로 볼 때는 평범한 2층 주택 한채 정도도 안되는 매우 작은 규모지만, 지금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기념관으로 격상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지난 1992년 한·중 수교가 체결된 후 양국의 교류 및 교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이제는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양국의 관계를 고려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독도를 자기들 땅 이라고 우기고, 위안부 및 난징 학살 등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일본의 집요한 역사왜곡에 맞서야 하는 한·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깔려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중국은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을 개장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중국 내에서 이뤄졌던 항일 운동 유적지의 관리를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 등 옛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우리 고대 국가들을 중국의 지방정부 식으로 왜곡하는 작업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데요. 이는 이해관계가 합치할 때는 같은 편이 되지만, 다를 때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기를 서슴치 않는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 외귝장각 도서가 다시 돌아오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을 일본에서 환수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한민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기에 가능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죠.  만일 우리가 미국 처럼 국제사회를 주름잡는 국가가 된다면 과연 우리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을 나라가 있을 까요? 돌려주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더 많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그게 국제 관계라고 하면 너무 나가는 것 인가요.

 아무튼 저는 중국 항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둘러보면서 풍찬노숙, 온갖 고통을 감내하면서 일제의 압제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독립시키기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몸부림과 그 유흔을 확인했습니다.

 그곳 비좁은 건물 안에 게시된 빛바랜 태극기와 허름한 침대, 김구 선생이 남긴 '독립만세' 유묵 등등.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과 선열들의 체취, 게시글 하나하나가 가슴 아리는 웅변으로 다가선 것은 저도 그분들의 유덕을 입은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죠. 기념관에서 삼가 옷깃을 여미고, 독립과 해방, 나라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기념관 안에는 음수사원( 飮水思源 )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인데요. 저는 이곳 중국 땅에서 고국의 독립을 그리며 위국헌신한 선열들이 飮水思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