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청량산(淸凉山)-산은 연꽃을 닮았고, 암봉은 붓을 세운듯 하더라
광복절 연휴를 맞아 경북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해발 870m)에 다녀왔습니다.
예로부터 소금강 이라고 불리던 영남 북부권의 명산.
청량산(淸凉山)은 지난 1982년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지난 2007년에는 청량사 사찰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구역이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23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을 단풍산으로 유명하지만, 12개 봉우리의 바위 암릉이 매우 빼어나고, 태백산 소백산 권역을 모두 아우르는 조망미 때문에 사시사철 어느때나 만족스럽습니다.
요즘은 장인봉,선학봉-자란봉을 잇는 깎아지른 협곡 사이의 '하늘다리'가 탐방 명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습니다.
빼어난 산세 떄문에 일찍이 시인, 명사와 참선하는 불가의 수도승들이 즐겨찾고 터를 잡아, 산 전체에 선현들의 발자취가 담긴 유허지가 가득하고, 고승들의 숨결이 웅숭깊게 배어 있습니다.
산행 들머리는 봉화군 명호면의 도립공원 구역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안동시 도산면에 연접해 있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청량산은 조선 유학의 거봉 퇴계 이황 선생과 인연이 깊은 산 입니다.
퇴계 선생은 청량산을 즐겨 찾아 스스로를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퇴계선생의 학문과 덕을 기리는 '도산서원'은 사실 청량산에서 지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 조선시대에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 선생이 청량산을 유람하면서 12개 봉우리(六六峯) 이름을 명명했고, 통일신라시대, 해동 제일의 명필로 꼽히는 김생이 암자를 짓고 10년간 글씨 공부를 한 곳(김생굴)이 있기도 합니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도 이 산에서 수도를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문(文)의 웅혼한 맥(脈)이 살아있는 산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신라 의상대사 또한 이곳 청량산과 깊은 인연을 맺은 고승이어서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은 청량산과 관련된 4성인으로 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위 험산으로 이뤄진 산의 지형 여건 떄문에 일찍부터 공부나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몰렸고, 천년 고찰 청량사도 산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보면 한떨기 연꽃을 닮은 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인 꽃술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비록 역사의 풍파 속에서 부침하며 지금은 그 옛날 대찰의 본래 모습을 온전히 구경하기는 어렵지만,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 청량사 법당인 유리보전(琉璃寶殿) 등 현재 남아있는 건물과 유지 만으로도 천년고찰의 풍모로는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량산은 특히 가을 단풍이 유명한 산인데, 산 중심에 있는 청량사가 단풍 속에 파묻힌 모습은 가히 천하에 으뜸가는 가을 경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청량산 입구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인봉'에서 청량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와 태백산·소백산 권역, 주변의 고랭지 지역을 바라보는 멋도 일품입니다.
산에는 험준한 산세에 의지해 쌓은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 등 산성(山城) 유적도 많습니다.
청량사 계곡 옆으로 형성된 청량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반대편 산줄기인 축용봉(해발 854m) 일대에 존재하는 공민왕산성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은 것으로 전해집니다.청량산성과 공민왕산성 사이에는 오마도산성(五馬道山城)'이 있어 두 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공민왕의 발자취는 공민왕당과 산성이 있는 축용봉 일대에 특히 많이 남아다고 하는데 축용봉은 제가 등산한 코스와는 청량사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산 이어서 저는 이번에 공민왕 유적까지는 볼 수 없었습니다.
공민왕은 이곳 청량산 일대에서 신격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고로 청량사 사찰 법당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 글씨도 공민왕이 남긴 것 라고 합니다.
*산행일시= 2014년 8월16일
*산행코스= 청량폭포 주차장-장인봉-하늘다리-연적봉-탁필봉-자소봉-김생굴-청량사-선학정-청량폭포 주차장
*산행거리= 총 6.7km
*산행시간= 4시간50분
안내판을 보니 청량산은 모두 5개 산행코스로 이뤄져 있습니다.
청량산을 완전히 한바퀴 순회하는 종주코스는 길이가 12.7km에 9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가장 짧은 코스는 입석-청량사-선학정을 잇는 2.3km에 1시간 입니다.
제가 택한 코스는 청량산 일반 산객들이 가장 많이 탐방하는 코스 입니다.
선학정이나 입석 쪽으로 올라가 산행을 시작한 뒤 청량사와 자소봉, 하늘다리, 장인봉을 거쳐 청량폭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더 많이 선호하지만, 저는 깔딱고개라고 일컬어도 될만큼 비탈 경사가 심한 청략폭포-장인봉을 먼저 오르는 코스를 택히 역순으로 진행했습니다.
된비알 비탈을 먼저 타는 것이 내려올 때 무릎 관절에 오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떄문입니다.
청량폭포 주차장- 장인봉까지 1.9km는 정말 된비알 입니다. 하염없이 급경사 비탈면을 타고 오르게 되는데, 군데군데 쉼터에서 주변을 굽어보는 재미가 있어 크게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비탈길 주변의 숲 또한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울창해서 여름 등산을 해도 아주 덥다고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청량산 최고의 명소인 하늘다리는 길이가 90m, 높이가 70m, 폭이 1.2m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 입니다. 하늘다리가 설치된 곳의 해발높이는 800m.
깎아지른 협곡에 걸린 하늘다리를 건너면 정말 아찔한 스릴이 일품입니다.
예전에는 자리 중간의 일정공간이 유리로 조성돼 있어 협곡의 허공을 걷는 것 같은 스릴이 최고였는데, 이번 방문길에 보니 유리공간은 없어져 다소 아쉬웠습니다.
하늘다리를 건너 연적봉-탁필봉-자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오르날내리락 하지만, 암릉미가 매우 빼어나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많은 산객들이 연적봉 못 미친 지점에서 뒷실고개를 타고 청량사 쪽으로 하산하는데, 개인적으로 연적봉-탁필봉-자소봉과 함께 김생굴을 꼭 탐방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잇닿아 있는 3개 바위 봉우리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다 바위 절벽 밑 김생굴의 신비스러운 모습이나 스토리가 탐방의 재미를 더합니다.
김생굴을 탐방하고, 내려오면서 만나게되는 청량사는 요사채와 가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말 상쾌하고, 아름다운 곳 입니다. 천년 고찰의 터로는 견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의 풍광이 수려하고, 활짝핀 연꽃(청량산)의 한가운데 든 것 같은 아늑한 가람의 분위기가 저절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곳 입니다.
이 깊은 산중에 민가가 있네요, 도르레를 설치한 것을 보니 짐을 옮기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가가 한채인 줄 알았더니 서너채나 되네요. 계곡 반대편 축용봉 능선의 구름도 이제 어느정도 걷혔습니다.
이 수풀 속으로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나무마다 넝쿨이 휘감고 있어 마치 수풀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은 길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장인봉 등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된비알 비탈길이 이어지는데 예전보다 계단이 많이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능선 마루에 올랏습니다. 우측으로 가면 하늘다리, 좌측으로 가면 장인봉 입니다. 여기서도 장인봉까지 300여m는 급경사 비탈길 입니다.
장인봉에서 낙동강 줄기를 굽어보면서 공원 입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었네요.
청량산에서 가장 높은 장인봉 입니다. 장인봉 표지석의 글씨는 이 산에서 공부한 신라 명필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주세붕이 중국 태산(泰山) 장악(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해 이름붙였다고 합니다.
장인봉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낙동강 상류를 굽어보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바위 절벽 위에서 주변을 조망하는 멋이 정말 일품입니다. 이제 청량산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되기 시작합니다. 아래 낙동강 물줄기는 태백산에서 발원한 것 입니다.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사위가 온통 구름에 휩싸여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는데, 3분도 지나지 않아 바람이 구름을 쓸고 가면서 더욱 황홀한 경치를 선물해 주더군요.
이제 장인봉에서 내려와 하늘다리 방면으로 진행합니다.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길이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청량산의 명물인 하늘다리에 도착했습니다. 길이 90m로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 입니다. 구름다리 형태지만, 흔들림이 심하지는 않아 재미삼아 편하게 건널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다리의 일정 공간이 강화유리 바닥으로 만들어져 있어 마치 허공을 걷는듯한 스릴을 맛보기도 했는데, 공포감 때문인지 지금은 강화유리 바닥은 아예 없어지고, 그냥 다리 위에서 사방을 조망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이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장인봉에서 자소봉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까마득한 협곡 아래로 다시 내려간 뒤 반대편 능선으로 기어오르는 등산을 했다고 합니다.
비상시 우회등산로가 있네요.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등산로 입니다.
이제 연적봉과 탁필봉, 자소봉 3개의 암봉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워낙 뾰족한 암봉들이기 때문에 연적봉을 제외하고는 암봉 정상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소봉의 경우 암봉 7-8부 지점의 다소 넓은 터가 정상을 대신하는데, 주변 조망미가 정말 입권입니다.
아래 탁필봉은 영락없이 붓끝을 닮았습니다. 봉우리마저 붓끝을 연상케하니 청량산은 정말 문(文)의 기운이 넘치는 곳 입니다.
탁필봉은 그냥 쳐다보고 지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표지석도 지나치는 등산로 옆에 서 있습니다.
자소봉 입니다. 멀리 태백산 권역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미가 정말 일품입니다. 시선을 거둘 수 없어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곳에서 오래 머무릅니다. 암벽 전문가가 아닌한, 맨손으로는 뾰족한 꼭대기로 오를 수 없습니다. 이제 자소봉에서 김생굴 방면으로 하산을 합니다.
청량산의 바위들은 대부분 자갈 같은 돌덩이가 그대로 섞여 있는 형태더군요. 마치 돌덩이를 시멘트로 이겨놓은 모양새 입니다.
통일신라시대 해동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김생이 공부를 했다고 하는 김생굴 입니다. 예전 등산 때는 이곳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에 탐방을 하게되니 역시 이름 그대로 명소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바위 절벽 아래에 이런 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이제 청량사로 접어듭니다. 김생굴에서 조금 이동을 하다보니 아늑한 청량사 가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를 자주 찾은 것응 기념하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 입니다. 청량정사 옆에는 지나가는 산객들에게 무료로 차(茶) 대접을 하는 '산꾼의 집'이 있습니다.
청량사 입니다. 청량산의 한가운데 꽃술 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산객들마다 "참 아늑하고 편안하다"는 말을 연발합니다. 사찰과 주변의 풍광이 그대로 한폭의 진경산수화가 되니 감탄사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량사 일주문을 벗어나 도로에 내려서니 '청량산인'-퇴계 이황 선생이 남긴 시가 산행 여정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아래 바위는 도립공원 입구에 있는 조경석인데, 청량산 산세를 닮은 바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