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적에게 소금을 보내다

좋은산 2013. 8. 16. 09:29

운명을 놓고 싸우는 전쟁터에서 적의 약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약점을 집중적으로 두들겨 적을 완전히 KO시키는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 상식일 겁니다.
 권투 경기를 할 때도 눈두덩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바람에 눈을 뜨기 어려운 선수의 눈을 상대방 선수가 집요하게 공격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데, 그렇다고 공격하는 쪽을 무턱대고 비난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경기를 위해 그 선수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또 그 경기에 선수의 인생이 걸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한 선수의 운명이 걸린 경기가 그럴진대, 한 국가나 세력의 운명이 걸린 전쟁은 더하지 않을까요.
 전쟁에서 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에 전쟁터에서는 야만성과 속임수 등이 상식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상대방의 눈을 속이고, 유인책을 쓰고, 거짓 정보를 흘리고, 약점을 가차없이 공격하는 것은 모두 전쟁의 기본, 즉 전법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 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모르는 장수는 패장이 되고 역사에서는 무능한 장수라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역사를 읽다보면 사활이 걸린 전쟁터에서 적의 약점을 발견했는데도, 이용을 않고 오히려 적이 그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하는 정말 '당당한' 무장들의 행적을 드물게나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두고두고 감동을 주는 일화로 인구에 회자되고, 운명을 놓고 싸우는 전쟁터에서도 지켜야할 원칙이 있는데, 인간사 다른 일에는 더 말해 무엇하겠냐는 식의 교훈을 일깨워 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무장들은 대부분 영웅적 풍모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적의 약점을 이용해 이기고 싶지는 않다. 당당하게 싸워 이기겠다'는 생각과 자신감은 정말 아무나 품을 수 있는게 아니죠.
 여기 그런 무장들 가운데 먼저 '살라딘'을 떠 올려 봅니다.

 살라딘은 12세기 제3차 십자군 전쟁(1187년∼1192년)때 '로빈후드'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와 맞서 싸운 이슬람 세계의 술탄 입니다.
 두 사람 모두 역사에서는 영웅이지요. 1191년 아수프 전투에서 맞붙었을 때 살라딘과 사자왕 리처드는 정말로 적을 존경하게 됩니다.
 리처드 1세가 전투중에 부상을 당하자 살라딘은 자신의 의사를 보내 상처를 치료하게 하고, 리처드 1세가 전투중에 말을 잃게되었을 때는 자신이 아끼는 말을 보내 리처드 1세가 그 말을 타고 전장에 다시 나오게 합니다. 또 리처드가 오랜 원정중에 병을 얻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雪)을 보내 체온을 식히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그런 살라딘의 호의와 풍모에 반한 리처드 1세가 자신의 누이 동생을 살라딘과 결혼시키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하니 두 사람이 정말 전쟁터에서 필사적으로 싸운 적인지 의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일본 전국시대 무장인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1530년-1578년)과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1521년-1573년)의 일화도 적에 대한 예의와 정정당당한 대결 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유명합니다.
 두사람은 16세기 중,후반기를 함께 살면서 일본 천하를 놓고 다퉜던 숙적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입니다.
 전쟁으로 해가 뜨고 지던 전국시대에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인 두사람.
 우에스기 겐신은 어느날 다케다 신겐이 다스리는 영지(내륙)에 소금이 떨어져 장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염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까요.
 땀을 많이 흘리는 등의 경험을 한 사람은 알겠지만, 원기가 쇠해 아마도 전쟁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적진에 소금이 떨어졌다는 것은 우에스기 겐신에게는 전쟁을 단숨에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호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우에스기 겐신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합니다.
 "다케다 신겐의 진영에 소금을 보내주라"는 것 이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적에게 소금을 보내다'는 말이 정당한 싸움을 의미하는 말로 자주 회자됩니다.
 우에스기 겐신은 훗날 자신의 호적수였던 다케다 신겐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아까운 사내가 갔다"며 밥 수저를 놓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다케다 신겐이 죽은 지금이야말로 신겐 쪽을 격파할 수 있는 호기"라고 측근 가신들이 서둘러 공격을 할 것을 간언하자 "상중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무장으로서 예의가 아니다"며 측근들의 간언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은 일본 천하 통일의 기초를 닦은 동시대의 오다 노부나가와 에도(江戶)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조차도 당시 두사람과 맞붙은 것을 꺼렸을 정도로 정말 걸출한 지략과 용맹을 보유하고 있던 무장이라고 하는데요.
 아마도 그들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일본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 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날로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에 살라딘과 우에스기 겐신을 재미삼아 한번 떠 올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