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대공산성-곤신봉(백두대간에서 가장 유서깊고, 광활한 공간)
강릉 대공산성(大公山城)과 곤신봉(坤申峰, 해발 1131m)을 돌고 왔습니다.
요즘은 각종 행사 때문에 주말에도 도저히 하루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로 반나절이면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을 다녀옵니다.
대공산성과 곤신봉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普賢寺) 계곡에서 등산을 시작해 백두대간 마루금에 오르는 코스입니다.
처음에는 보통 산행과 별로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산길 등산로가 이어지지만, 정상부에 다다르면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가다쉬다를 반복하는 때가 많아지는 것이 이 코스의 특징입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산객들의 눈을 유혹하는 특이한 볼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돌로 쌓은 옛 산성이 고색창연한 원형 그대로 존재하는가 하면, 백두대간 마루금의 드넓은 평원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곳 '바람의 나라'에서 쉴새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풍차의 행렬 또한 쉽게 눈길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정상부에는 이즈음, 갖가지 야생화도 앞다퉈 만개해 바쁜 산객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능선의 초원 위에 외로운 소나무가 한두그루씩 풍차와 짝을 이루고 서 있는 희한한 광경은 스크린에 옮기면 그대로 영화의 한장면이 되고도 남습니다.
하산길에 어명정(御命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광화문 복원을 위해 어명을 받아 잘려나간 금강송의 거대한 그루터기도 만날 수 있고, 때깔부터 다른 토종 금강송이 산 곳곳에 줄지어 도열해 있는 흔치않은 모습도 목도하게 됩니다.
*산행일시: 2014년 7월19일
*코스: 보현사 계곡- 임도(1,2)-전망대 쉼터-108계단- 대공산성-곤신봉- 대공산성- 술잔바위-어명정-거북등- 보현사 계곡
*이동거리: 11.5km
*소요시간: 4시간
전체 거리는 일부 코스 변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제가 다녀온 코스는 11.5km 정도가 되더군요.
사실 반나절 산행으로는 종주하기가 어려운 코스인데, 빠른 걸음으로 다녀오니 4시간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등산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 계곡에서 시작됩니다.
보현사 사찰 입구가 들머리 입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보현사 쪽으로 100여m 정도 걸음을 옮기면 우측 산비탈 쪽으로 들머리가 나타납니다.
들머리에서 100m 정도만 오르면 대공폭포를 만나게되는데, 물줄기가 그리 장쾌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대공산성 8부 능선 쯤에 오를 때 까지 산행은 일반 등산과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성으로 오르기 직전 전망대부터는 산행의 즐거움이 급상승 합니다.
나무데크로 이뤄진 전망대에서는 강릉시내는 물론 멀리 주문진과 동해바다까지 한눈에 조망이 가능합니다.
대공산성에서부터는 눈 마주치는 것이 모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즐거움의 연속입니다.
세월의 때가 켜켜이 내려앉은 산성은 등산로 양 옆으로 길게 뻗어나가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에 옛 선인들의 산성 축조술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학습장입니다.
저는 그동안 숱하게 동해안 산행을 했지만, 이렇게 잘 보존된 산성 유적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공산성이 지난 1979년 강원도기념물 28호로 지정된 것도 그만큼 보존이 양호하다는 판단 때문이겠죠.
그런데, 산을 오르는데 급급해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 이곳에 산성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 대공산성 전망대를 지나 산성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반드시 주변을 살피면서 여유를 가지고 등산해야 합니다.
산성 내에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우물형 샘터가 있는데, 그 규모가 웬만한 여염집의 옛 우물에 비견될 정도여서 옛날 이곳에 주둔하던 사람들의 규모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산성은 서편 산성마루, 서문 쪽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산성이 자리잡고 있는 보현산이 해발 944m라고 하니, 산성마루의 높이도 그쯤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공산성 마루에 올라서면 서편 백두대간 능선과 풍차가 한눈에 들어오는데,10-15분 정도면 다다를 수 있습니다.
대공산성을 넘어 만나게되는 백두대간은 남쪽 능경봉-대관령-선자령을 거쳐 이곳까지 뻗어온 능선입니다. 북으로는 오대산 노인봉과 진고개로 능선이 하염없이 이어집니다.
이곳의 백두대간 마루금은 대평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드넓은 풀밭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 평원의 풀밭을 따라 거대한 풍차가 쉴새없이 돌아갑니다. 연중 거센 바람이 끊이지 않은 이곳 '바람의 나라'를 지키는 주인공들입니다. 푸른 초원 위로 수없이 많은 하얀 풍차가 날개를 펼친채 도열해 있고, 그 위로 파란 하늘이 색조의 예술을 더하니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은 오직 탄성만 연발할 뿐 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곤신봉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700-800m 정도만 이동하면 됩니다. 온통 풀밭인 마루금 등산로 주변에 작은 바위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곤신봉입니다.
곤신봉 바위 너머로 바라다보는 백두대간 능선의 풍광은 글로는 표현키 어려우니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고, 꼭 다시오겠다는 마음을 품게하는 노스텔지어 같은 황홀경이 그곳에 있습니다.
이제 들머리에 접어듭니다. 우측 산비탈 쪽으로 등산이 시작됩니다.
대공폭포 입니다. 들머리에서 100m 쯤 되는 지점입니다. 물줄기는 그리 많지 않는데, 약간은 신비스럽습니다.
숲 가꾸기를 하면서 아래에 있는 어린나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용가치가 없는 큰나무 줄기를 벗겨 그대로 고사시키는 환상박피를 한 흔적입니다.
넓은 임도를 따라 수백m 이동하면 산불초소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다시 대공산성 숲길 등산이 시작됩니다.
다리를 너무 멋지게 놓은 바람에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가 된 것 같네요. 마치 한옥 주변에 양옥이 하나 서 있는 듯.
이제 대공산성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대공산성과 술잔바위-어명정 코스가 갈립니다.
이름은 '108계단' 이라고 해 놓았는데, 크게 주목을 끌만한 계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공산성 바로 아래 전망대에 도착햇습니다. 나무데크로 만들어 쉬어가지 참 좋은 곳인데, 동쪽으로는 강릉시내와 동해바다, 서쪽으로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부터 산성 흔적을 잘 살펴야 합니다. 아래 '동문', 좌우측으로 산성이 길게 이어집니다.
대공산성 입니다. 백제 온조왕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해 쌓았다는 설과 발해의 대씨(大氏) 왕조에서 쌓았다고 해 '대공산성'으로 불린다는 설이 있으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로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조선의 지리지 기록에 대부분 보현산성으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보현산성'으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합니다. 산성의 높이는 2.3m-2.5m, 둘레 길이는 4km에 달한다고 하니 규모도 큰편입니다. 침입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밖으로 돌출해 쌓은 치성 흔적이 보이고, 내부에는 건물터와 우물터, 성문터 등이 남아 있습니다. 또 토기 조각을 비롯해 여러 유물이 발견된다고 하니 이곳 강릉 일대 고대성의 거점임에는 분명합니다. 을미의병 때 원주에서 일어난 민용호 부대가 1896년, 이곳 대공산성에 거점을 잡고 한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합니다. 강릉지역에서는 '대공산성', '대궁산성', '보현산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산성 안의 우물터 입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 처럼 모양이 아주 깔끔합니다. 안에는 명경 처럼 맑은 물이 요즘도 끊임없이 샘솟습니다. 아마도 옛 선인들도 이 물을 마시면서 적과 맞섰겠죠.
산성마루, 서문 쪽에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이곳도 주변 조망이 참 좋은 곳 입니다. 이제 백두대간 마루금과 곤신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지척입니다.
서문 쪽에도 이렇게 성벽 흔적이 남아 있고, 대공산성지를 알리는 표지판도 있습니다.
이제 백두대간 마루금의 풍차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뒤로 곤신봉이 있고, 백두대간 종주 코스입니다.
. 백두대간 마루금에 도착하기 적전에 쉬어가기 좋은 쉼터가 있는데, 그 주변은 야생화 꽃밭입니다. 정말 다양한 꽃들이 있는데, 제가 스마트폰 초첨을 잘 맞추지 못해 사진은 그리 잘 나온 편이 아닙니다
대간 마루금에 올라서자마자 풍차가 먼저 환영 인사를 합니다. 허리까지 오는 풀밭이 워낙 무성해 발을 들여놓기가 좀 겁이 날 정도입니다. 길이 난 곳으로 조심스레 발을 올기니 정말 환상 그자체인 경치가 펼쳐집니다. 이곳 풍차들은 남쪽으로 마주 보이는 선자령 능선에서부터 계속 이어집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세기도 어렵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풀밭과 풍차, 하늘색이 정말 예술인데, 오늘은 감흥이 조금 덜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바람이 없어 구경하기에는 그만입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풍차가 세차게 돌면서 윙-윙 소리가 나는데, 그 밑에 서 있기가 겁날 정도입니다. 이곳에 서는 등산객들은 모두 한동안 끝없이 펼쳐진 희한한 풍광 앞에서 넋을 놓기 일쑤입니다. 다음 행선을 위해 발길을 옮겨야 하는데, 경치가 쉽게 발을 놓아주지 않는 것 입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북쪽 언덕에 곤신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빠지지 말고, 이 길만 따라가면 됩니다.
이제 해발 1131m 곤신봉에 도착했습니다. 바위 봉우리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쉽게 오를만한 크기이기 때문에 더 정겹습니다. 풀밭 위에 이런 바위 동산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특이합니다. 곤신봉 바위 너머로 펼쳐지는 대간 능선의 물결과 풍차의 행진이 정말 압도적 입니다. 저 또한 곤신봉이 연출하는 경치에 홀려 한동안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 소나무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냥 화면에만 담으면 영화의 한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하산하기 전 다시 한번 대간 능선의 풀밭과 풍차를 눈에 담습니다.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곳 대간의 활홀경 입니다.
대간 능선을 오르기 직전에 만났던 쉼터를 하산하면서 다시 한번 주변의 야생화들을 담아 봤습니다.
이제 저는 술잔바위와 어명정 쪽으로 하산합니다. 이쪽으로 가면 1.5km 정도는 더 돌게 되는데, 그래도 다른 볼거리가 있으니 그냥 내려가기 어려습니다.
바위에 뚫린 구멍이 마치 신선들이 먹는 술잔 처럼 생겼다고 해서 술잔바위인가요?
어명정 입니다. 지난 2007년 광화문 복원에 사용할 금강소나무를 벌채하면서 제례를 올린 곳 입니다. 예로부터 큰 소나무를 벨 때는 목공들이 "어명이요"라고 세번 외치면서 나무를 베게 되는데, 그것은 큰 나무에 깃들어 있는 신령스런 기운 때문입니다. 즉, 나랏님의 명령, 즉 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베게되는 것이니 벌목공을 탓하지 말아 달라는 뜻 입니다. 이곳에서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3그루를 베고,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당시 벌목행사에는 임금의 명에 의해 벌목을 한다는 교지를 내리고, 산림청장과 문화재청장이 직접 제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곳 소나무도 문화재의 중심 목재로 되살아나 다시 천년 생명을 얻었겠죠. 어명정 정자 안에는 당시 잘려나간 금강소나무의 그루터기가 유리관 안에 보존돼 있습니다. 밑둥의 굵기로 미뤄 이 소나무가 어느정도 크기였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산길에는 낙엽 활엽수와 소나무 침엽수가 등산로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마주보고 서 있는 광경도 만나게 됩니다. 아마도 조림을 하면서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 같은데, 다른 수종의 나무들이 편을 갈라 서 있는 것 처럼 이색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