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나의 힘

정선 가리왕산 장구목이 코스 산행기- 숲의 모든 것을 보다

좋은산 2014. 6. 22. 16:26

  속된말로 빡센 등산을 하고 왔습니다.

 해발 1561m.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있는 가리왕산(加里旺山).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우리나라(남한) 10대 고봉의 반열에 드는 높은 산 입니다.

 가리왕산 일원 1948ha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니 이 산이 가지고 있는 산림자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생태계의 보고라는 뜻이죠.

   

 

 

 

 

 

 

 

 

 

 

 

 

 

 

 삼국시대 이전, 강원도 땅에 자리잡았던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외부의 침략을 피해 이 산으로 숨어들어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해 '갈왕산'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가리왕산'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산의 모습이 볏단이나 나무토막을 쌓아올린 볏가리, 나뭇가리를 닮았다고 해 가리왕산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유래도 있습니다.

 

 가리왕산은 우리나라 10대 고산이라는 이름값 그대로 정상을 밟기 위해서는 다소 힘겨운 도전이 필요합니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깊은 산에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등산로가 펼쳐지고, 웬만한 산의 깔딱고개는 명함도 못내밀 된비알 급경사로까지 자리잡고 있으니 정말 땀 빼는 등산은 이런 경우를 말 합니다.

 아마도 산에 든 등산객을 이 산의 주인인 '갈왕'이 침략자로 오인해 버티고 막아서는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리왕산은 힘든 만큼 등산의 쾌감 또한 배가되는 곳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리왕산은 '숲이 갖춰야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산' 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수년전, 한겨울에 가리왕산을 오를 때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심설에다 정상에서 채 3분을 견디기 힘든 살을 에는 맹추위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데 급급했으나, 이번에 신록이 우거진 여름 초입에 다시 가리왕산을 오르면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가리왕산의 진면목을 드디어 목도하고,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바위며 나무 등걸 할 것 없이 이끼가 덕지덕지 앉은 '이끼계곡', 그곳을 타고 흐르는 명경지수와 작은 폭포들의 행진, 더위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심산의 원시림, 그런 곳에 사철 푸른 거대한 주목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객들을 맞으니 이런 숲은 도시의 콘크리트와 미세먼지에 찌든 우리네 현대인들에게는 정말 큰 선물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도 가리왕산의 저 경외스런 주목들은 그 옛날의 '갈왕'의 호위병이 아니었을까요.

  주목은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고 합니다.

 고사목으로도 위용을 잃지않고 있는 몇몇 주목들은 고대 갈왕 시대부터 이곳에 뿌리는 내렸던 것은 아닐까요?


 가리왕산 정상은 제가 다시찾은 오늘도 안개 구름에 덮여 멀리 원경까지 감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년전,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겨울 보다는 훨씬 시야가 좋아졌습니다.

 정상의 돌탑 옆을 돌면서 사방을 들러보니 안개구름에 살짝 덮인 능선 마루의 풍광이 더욱 신비하네요.

 키작은 고산 나무들 사이로 주목이 수호신 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고, 사방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로 안개 구름이 바람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니, 한순간 저는 먼 옛날 '갈왕'이 펼쳐놓은 '팔괘진'에 든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도 했습니다.

 이제 사진을 보면서 숲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가리왕산 된비알을 함께 올라보시죠.

 

 *산행일시= 2014년 6월21일

 *산행코스= 장구목이 입구- 이끼계곡- 장구목이 임도- 깔딱고개 비탈길- 정상 삼거리-가리왕산 정상-원점 회귀

 *산행거리= 편도 4.2km(왕복 8.4km)

 *산행시간= 왕복 4시간40분

 

 

 

 

 

 

 

  산행은 정선-평창 진부를 잇는 59번 국도의 도로변에서 시작됩니다. '장구목이 입구'라는 곳인데, 행정구역으로는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입니다. 장구목이는 계곡이 장구의 목 처럼 생겼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도변에 차를 댈 수 있는 조금 넓은 터가 있고 이렇게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집니다.

 

 

 

 

 

 

 

 등산로는 계곡의 물길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데요. 세속의 때 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맑은 물이 흐릅니다. 바위를 타고 넘는 물이 마치 작은 폭포 처럼 보입니다. 가리왕산 계곡에는 이렇게 바위 경사면을 타고 넘는 작은 폭포가 참 많습니다. 100m 이동을 하면 또 한개 폭포가 나타나는 식 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끼가 참  많죠. 계곡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바위며, 나무에 이끼는 더 두터워집니다. 그래서 가리왕산 장구목이 계곡은 짙은 녹색과 하얀색의 조화가 더욱 눈부십니다.

 

 

 

 

 

 

 

 

 

 

 

 

 

 

 

 

 

 

 

 작은 폭포가 아예 여러개 단을 이루고 흘러 내립니다. 물줄기를 빼고는 나무, 바위에 온통 이끼입니다. 아예 이끼폭포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 이끼와 물빛이 묘하게 조화를 이뤄 색의 대비가 더욱 선연합니다. 햇빛이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골이 갚고, 숲이 우거지다 보니 이렇게 원시적 풍광을 연출해 놓았는가 봅니다.

 

 

 

 

 

 

  마치 깊은 숲속에 위장한 토치카 같지 않나요? 사실은 썩은 나무가 산 비탈면에 넘어진 것인데, 나무줄기가 진지에서 뻗어나온 포신 같습니다.

 

 

 

 

 

 

 

 

 

 

 

 이제 장구목이 임도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벌써 3km를 거슬러 올라습니다. 여기서는 1.2km만 더 가면 가리왕산 정산인데, 가리왕산 급경사 비탈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진정한 된비알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합니다.

 너덜바위 길 급경사로가 마치 거대한 벽 처럼 산객들을 막아서는데, 아주 급한 된비알 코스는 700-800m 정도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비탈길이지만, 워낙에 경사가 심하다보니 이동에 시간, 에너지 소모가 적지 않습니다.

 안내판에 1.2km 이동에 1시간30분이 걸린다고 적혀 있는 것 보이시죠. 가리왕산 장구목이 안내판에는 등산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4.2km 이동에 4시간에 걸린다고 적혀 있는데, 그것은 너무 과하게 잡은 것 입니다. 실제로는 등산에 2시간30분, 하산에 2시간 정도를 잡으면 될 겁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동시간은 장구목이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해 다시 그곳으로 돌아로는 시간입니다. 숙암분교가 있는 중봉, 하봉 쪽은 거리가 훨씬 머니 이동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당연지사겠죠.

 이곳 임도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제가 무심코 함께 간 동료에게 '여기서부터 정말 비탈이 시작된다. 이제부가 진정한 등산'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곁에서 듣더니 "더 심한 비탈이라고요? 지금도 죽을 것 같은데"라고 호들갑을 떨거군요. 3km 계곡 오르막을 걸어 와 녹초가 된 아주머니가 옆에 있는 것을 모르고 제가 너무 사실적으로 얘기를 했나 보네요?

 그래도 이제 남은 거리가 1.2km 정도인데, 여기서 포기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급경사로는 계속 너덜바위 길로 이어집니다. 비가 내린 뒤 흠뻑 젖은 바위면을 딛고 오르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수년전 한겨울에 이곳을 오를 때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에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면서 정말 심한 경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너덜바위 길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이런 바위 길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 나무는 공중에 떠 있는 얇은 바위면 뿌리를 내리고 컸네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참으로 힘겨운 사투를 벌였을텐데 악조건 속에서도 뿌리를 뻗으며 잘 컸습니다.

 

 

 

  이제 벽 처럼 우리를 막아서던 너벌바위 된비알은 거의 끝나고, 이제는 전형적인 육산의 등산로가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부터는 '주목'이 최고의 볼거리 입니다. 경사로는 계속 이어지지만, 살아천년 죽어천년 주목의 경외스런 모습 앞에 시시각각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주목을 감상할 때는 한쪽면에서만 구경에해서는 실체를 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주목의 형태도 전혀 다른 나무인 것 처럼 변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볼 때는 분명 둥근 기둥이 우람하게 뻗은 나무였는데, 뒤 쪽으로 가서 보면 기둥이 모두 파여 나가고 둥근 기둥면만 남아있는 주목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푸른 잎에 생명을 잃지 않고 있으니 역시 주목은 나무의 제왕이라고 할 만 합니다.

  이 여자분은 정말 등산의 고수더군요. 등산에는 자신있다고 여긴 우리를 제치고 앞서 가는데,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속도였습니다. 정상에 거의 다다른 상황에서도 이런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고수라고 할 수 있죠.

 

 

 

 

 

 

 

 

 

 

 

 

 

 

 

 

 

 

 

 

 

 

 

 

 

 

 

 

 

 

 

 

 

 

 

 정상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오르막 길은 다 올라온 겁니다. 정상 능선을 타고 여기서부터 200m만 더 이동하면 우리나라 10대 고봉의 하나인 가리왕산의 정상 입니다. 날씨 때문에 시야 확보가 좋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역시나 안개 구름이 주변에 짙게 덮여 있습니다. 그래도 안개 구름 정도면 정말 고맙습니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구름이 또 다른 신비감을 연출하기 때문이죠. 고산의 정상은 열번을 밟아도 매번 다른 산 처럼 느껴집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정상의 풍경화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계절이라고 해도 그날 날씨에 따라 정상의 모습은 전혀 다른 곳 처럼 변하는 때가 허다합니다.

 

 

 

 

 

 

 

 

 

 

 

 

 

 

 

 

 

 

 

 

 

 

 

 

 

 

 

 

 

  이 나무가 서 있는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점심 먹기 정말 좋은 장소가 있습니다. 나무 밑도 좋고, 그 옆의 바위 위도 휴식처로는 안성마춤 입니다.

 

 

 

 

 

  주목 나무가 서 있는 능선 너머로 흩날리는 안개 구름이 가리왕산의 모습을 완전히 신비경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마치 무슨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별천지에 온 것 같은 황홀함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참고로 수년전 엄동이 맹위를 떨치던 한겨울에 오른 가리왕산 사진을 올려봅니다.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동토의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 것 같지 않습니까?